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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및교육/세계속 명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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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물질문명의 환영-절대주의 현대물질문명의 환영-절대주의 비물질적이고 비대상적인 실체에 가시적인 형태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절대주의의 엄격성으로 표현된 것이 이다. 1913년 말엽부터 말레비치는 기울인 직사각형을 연구. 단순화된 구성을 통해 항공술을 비롯한 현대 기술공학을 상징. 비행의 감각, 금속성의 소리, 무선 전보의 느낌 같은 것을 기울어진 직사각형의 배열을 통해 표현. 카지미르 말레비치, 1915 카지미르 말레비치, 1918
현대물질문명의 환영-미래주의 현대물질문명의 환영-미래주의 3면화, 떠나는 사람들,작별하는 사람들, 남아있는 사람들을 그렸는데, 이 그림은 중앙에 위치. 그림의 장면은 기차역에 기차가 들어오고, 아쉬운 이별을 하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기차의 양편으로 서로 껴안고 작별의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6943이라는 숫자를 달고 무지개색 증기가 흘러나오는 기차는 기술공학의 상징이다. 움베르토 보치오니, 1911
현실을 보는 눈과 감정-입체주의 현실을 보는 눈과 감정-입체주의 아프리카 가면 조각에서 힌트를 얻은 얼굴을 오른 쪽의 두 인물에 적용시키고 있다. 아래쪽 가면 같은 형상의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몸통은 등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원근법이 사라지고, 여러 각도에서 본 시각이 하나의 평면에 종합되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 1907
감정의 시작 - 표현주의 1905년 독일의 "다리파" 감정의 시작 - 표현주의 1905년 독일의 "다리파" 소리를 재료로 하는 음악이 순수한 추상이라 생각한 칸딘스키는 미술역시 음악과 같은 추상이 표현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리듬, 음색, 멜로디 같은 음악적 형식들을 색채와 선의 다양한 배열을 통해 공포, 비애, 환희 같은 자신의 내적 경험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정신적인 가치는 가시적인 세계의 재현을 통해서 성취되기 보다는 추상적 구성과 시적인 표현을 통해서 가능하다. 바실리 칸딘스키, 1913
감정의 시작 - 표현주의 감정의 시작 - 표현주의 불안, 공포, 고독, 성, 죽음 등의 주제이다. 시기적으로 표현주의 미술가들은 예민하고 불안정하였다. 뭉크도 전형적인 표현주의자였었는데,유년시절 어머니와 누나를 잃은 경험이 나중에 까지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소리를 지르는 뭉크의 얼굴은 마치 해골처럼 보인다. 왜곡된 형상이 고독과 공포에 휩싸인 그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에두와르 뭉크, 1893
색채의 자율성과 회화의 자율성의 선언- 야수파 색채의 자율성과 회화의 자율성의 선언- 야수파 기존의 미술에선 볼 수 없었던 직접적이고 강렬한 표현 효과가 원시미술에서 찾을 수 있다. 원시 미술의 단순한 선과 강렬한 색채가 주는 직접적인 효과는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앙리 마티스, 1911
눈에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다. 인상주의 눈에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다. 인상주의 프리즘의 발견과 함께 빛의 분석이 시작된 것으로서 혼합되지 않은 물감을 작은 점들로 병치하였을 때 가장 정확하고 선명한 색채효과를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르주 쇠라 1889∼90년, 캔버스에 유채 원근법이 완전히 무시되고, 하나의 시점을 중심으로 모든 사물들을 통일성 있게 그린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시점을 동시에 사용하여 한 화면안에 종합시키고 있다. 폴 세잔, 1890-94
대상에 첨가되는 감정 - 인상주의 대상에 첨가되는 감정 - 인상주의 실제의 상황에 개인적 감정과 격정성을 포함시켜 작품을 제작하였다. 고흐는 보여지는 대상에 대한 재현의 모습속에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그린 것.격렬한 붓놀림은 일상의 풍경이 아닌 감성의 것임을 알려준다. 마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교회가 고흐 자신의 상징성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고흐 프로방스의 늙은 농부 실재의 상황과 비현실적 상황을 한 화면에 혼재 시켜 현실 안에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려 하였다. 낭만주의적 기법을 현재의 상황에 결합 시킨 작품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설교 후 집단화 되어지는 환영을 표현.구약성서의 야곱과 천사와의 씨름모습의 환영으로 드러내고 있다. 폴 고갱, 1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