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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

[사진전시]김승구, 정민영 사진전

김승구, 정민영 사진전

'別(별) 이야기'


김승구_<Strange Park>_Gelatin silver print_20*20inch_2006



2008년 6월 11일 ~ 6월 24일

아트비트 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56 성보빌딩 3층 02-722-8749

www.artbit.co.kr


초대일: 2008년 6월 11일 오후 6시



別(별) 이야기

김회철(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

때로는 남은 사람보다 떠난 사람이 더 많다. 남은 자, 혹은 남을 자의 공허함이 떠난 자의 흔적을 되짚어 가거나 떠날 자의 여정을 미리 준비해 보는 것으로 극복될 수 있다면, 이후의 작업에서 보이는 이미지의 채집과 순간의 기록은 그러한 지리멸렬한 삶의 실천적 극복에 대한 좋은 본보기로 기능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김승구와 정민영이라는 두 신예작가의 사진은 일상적인 삶의 대조적인 모습들, 이를테면 떠남과 남겨짐은 물론, 밤과 낮, 현실과 비현실, 공공성과 개인성 등의 너무나 익숙해서 사소해 보이는, 그러나 오히려 본질에 접근하는 문제들에 대한 진솔한 응답을 적어내고 있는데, 이것은 작은 움직임이 큰 파동을 이끌어내듯, 미세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보편적 정서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과정의 출발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승구_<Strange Park>_Gelatin silver print_20*20inch_2007


김승구_<Strange Park>_Gelatin silver print_20*20inch_2008

 

김승구_<Strange Park>_Gelatin silver print_20*20inch_2006

 

김승구_<Strange Park>_Gelatin silver print_20*20inch_2008


김승구_<Strange Park>_Gelatin silver print_40*40inch_2006


먼저 김승구의 <Strange Park> 시리즈는 거대 경제개발로 인해 부가적으로 ‘남겨진’ 땅에 조성된 지역인 한강시민공원 등을 탐사하며 사람들의 이용시간이 지난 이후의 흔적들을 채집하기 시작한다. 공간적 범위를 일련의 공원에 한정시키는 한편, 시간적 범위를 밤으로 제한시키고 그 위에 흑백사진이라는 작업적 범위까지도 규정한다. 이후 작가는 마치 수렵을 떠나는 과거의 역사적 인류마냥 한발 한발 ‘떠나간’, 혹은 집으로 돌아간 현대인들의 미세한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는데, 이 거칠고도 섬세한 흔적들은 개개의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흑백사진에서 오는 명암(明暗)의 문제가 아닌 작품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 건져 올려진 정서의 대비에 기인한다. 이를테면 실제로 흑백사진의 어느 한 지점이 형광처럼 빛나며 선사하는 시각적 쾌감에 다름 아니고, 이내 작가는 도리어 한 호흡 들여 마시며 그러한 폭발의 발광(發光)을 거둬들인다.


김승구_<Strange Park>_Gelatin silver print_20*20inch_2007

 

김승구_<Strange Park>_Gelatin silver print_40*40inch_2006


김승구_<Strange Park>_Gelatin silver print_20*20inch_2006

 

김승구_<Strange Park>_Gelatin silver print_20*20inch_2008


한편 정민영은 선명한 컬러사진에 그 자체가 형광의 대비로 표현될 만큼의 강렬한 보색으로 자신의 외할머니에 대한 <老妄 로망 Romance>를 기록하고 있다. 김승구와는 대조적으로 보다 직접적인 인공광(보통 스트로보(strobo)라고 부르는)을 이용하여 정서의 대비를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물론, 의도적인 서투름을 가장하여 마치 잘못 찍은 사진처럼 시각적 환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서투른 가장은 실제로 재현의 대상인 할머니에게로 고스란히 전달되어 ‘떠날’ 자의 운명을 내재한 자가 오히려 지금 막 돌아온 듯한 순진무구한 대상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대상의 배경으로 전개되는 유원지나 놀이공원, 대형할인마트, 심지어 유흥을 겸한 숙박업소 등은 인생의 찬란했던 한때의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극명하게 대변해주고, ‘팬지(pansy)’꽃이 흐드러지게 핀 벌판에 누워있는 할머니가 ‘펜디(fendi)’라는 명품브랜드의 쇼핑백을 들고 있는 장면에 이르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시각적 명료함을 확보하게 된다.


정민영_老妄 로망 Romance_digital c-print_120X76cm_2007

 

정민영_老妄 로망 Romance_digital c-print_120X76cm_2007

 

정민영_老妄 로망 Romance_digital c-print_120X76cm_2007

 

정민영_老妄 로망 Romance_digital c-print_120X76cm_2007

 

정민영_老妄 로망 Romance_digital c-print_120X76cm_2007


김승구와 정민영이라는 두 신예작가의 시각적 정직성과 서사의 진정성은 ‘이미지 시대에 표현의 리얼리티 문제는 실재로 존재했던 과거와 그 흔적인 이미지 사이의 변증법적 움직임’이라는 비교영상학자 미츠히로 요시모토(Mitsuhiro Yoshimoto)의 언급을 굳이 빌리지 않고서도, 아울러 흔히들 이야기해서 오히려 쉬워져 버렸다고 착각하게 되는 ‘언캐니(uncanny)’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고서도 충분히 실감나는 가치를 지닌다. 가공하고 포장하지 않는 이들의 생생한 ‘날 것’의 작업은 이후의 지속적인 활동에서 그 폭발력이 가감없이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양념이 아무리 훌륭해도 좋은 식재료에는 미치지 못하는 이유이며, 재료 자체의 솔직한 식감(食感)은 그래서 늘 낯선 것이고, 작업은 늘 그렇게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정민영_老妄 로망 Romance_digital c-print_120X76cm_2007

 

정민영_老妄 로망 Romance_digital c-print_80X120cm_2007

 

정민영_老妄 로망 Romance_digital c-print_80X120cm_2007

 

정민영_老妄 로망 Romance_digital c-print_80X120cm_2007

 

정민영_老妄 로망 Romance_digital c-print_80X120cm_2007


Strange Park

 다수를 위해 조성된 공원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공 장소이다. 이곳에는 조성과정이나 이용자의 어떤 행위에 의해 남겨진 자국과 자취가 있으며, 이 별스럽지 않은 흔적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지나간 현상과 행위를 나타내는 흔적을 의도적으로 프레임 안에 위치시키고, 밤과 흑백이라는 비현실적 접근방식을 통해 공간의 목적과 기능을 약화시켜, 낯설게 하는 일종의 변형을 시도한다.

 이처럼 공원이라는 평범한 풍경의 낯선 제시는 현실의 인식과 사진의 재현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는 동일한 공간이 관점과 해석에 따라 다양한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김승구


老妄 로망 Romance

새벽녘 가는 눈을 뜨는 날이면 할머니는 거울 앞에서 기름을 바른 머리칼을 참빗으로 가지런히 빗고, 쪽머리를 하고 계셨던 걸로 기억된다. 새벽의 시간과 색, 머릿기름의 냄새는 할머니의 모습과 제법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생사의 언덕을 여러 번 넘어 다시 살은 할머니는 긴 머리를 자르셨고, 새벽녘 머리를 묶는 대신 짐 가방을 꾸리셨다.채식의 습관대신 고기를 드시게 되었는데, 물론 수저의 사용보다 손이란 도구를 익숙케 사용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고, 평생 입지 않으실 것 같았던 강렬한 자연의 색과 패턴의 옷도 개의치 않으셨다.

나는 그 모습이 할머니의 노망이라 생각되어 부끄러웠던 때도 있었지만 이내 그것은 사회적, 학습적 테두리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나는 할머니를 부축하고,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세운다. 나는 할머니의 老妄을 기록하고, 할머니는 로망을 만들어간다. 우리는 ‘우리의 老妄’이 로망이며, 나아가 Romance임을 안다. - 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