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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받은 박수근의 그림이 우리 가족을 살려"
진위공방 ''빨래터'' 갖고 있었던 존 릭스 美 현지 인터뷰
"54~56년 한국 근무때 교분 물감·캔버스 구해준 답례로 받아
형편 기울어 경매에 내놨지만 위작시비 가슴 아파 직접 나서"
새해 벽두부터 진위 공방에 휩싸였다가 감정위원회로부터 진품 판정을 받은 박수근(1914~1965)의 유화 ''빨래터''는 원래 미국에 있었다. 원소장자였던 미국인 존 릭스(John Ricks·81)씨가 경매 관례를 깨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29일 그는 미국 켄터키주 모처에 있는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박수근의 장남 성남(61)씨, 서울옥션 관계자, 본지 기자를 함께 만났다. 하지만 "기자들이 나를 찾아내서 우리 집으로 오는 게 겁난다"며 인터뷰 지역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낡은 여권 두 개를 꺼내 천천히 한 장씩 넘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1954년 1월부터 56년 12월까지 한국에 머물 때 쓰던 여권이에요. 평생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브라질, 유럽,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살았는데, 나이가 들면 기억이 희미해져요. 그래서 여권을 들여다보면서 옛날 생각을 해요."
릭스씨는 당시 ''헤닝슨 컴퍼니''라는 무역회사의 한국 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박수근을 알게 됐다. 박수근이 1960년대에 미국인 컬렉터였던 마가렛 밀러 여사에게 쓴 편지 중에도 "존 릭스씨는 홍콩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50년대와 60년대에 박수근 그림을 샀던 사람은 대부분 미군이거나 전후 복구사업으로 한국에 머물던 외국인들이다.
"우리 회사가 서울 반도호텔에 있었는데,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던 조군실이라는 한국 군인이 어느 날 박수근을 데려와 소개해 줬어요. 저는 당시 일본과 한국 지사를 담당하고 있었고, 아내와 세 아이들은 일본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일본에 갔지요. 박수근은 제가 일본에 갈 때면 물감과 캔버스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곤 했어요."
박수근은 답례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곤 했다. ''빨래터''도 그 중 하나였다. "그가 사무실로 직접 들고 왔지요. 한국 근무 이후 홍콩, 싱가포르, 호주, 유럽 등 세계 곳곳에 근무하면서 늘 내 사무실에 박수근의 그림들을 걸어 두었어요. 보는 사람들마다 좋아했어요."
50년 동안 간직하고 있었지만 박수근의 그림이 비쌀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2004년 릭스씨의 아내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사위가 죽은 것을 계기로 모든 게 달라졌다.
"그해는 우리 가족에게 매우 힘들었어요. 이듬해에 딸아이가 집안 살림 일부를 정리하기 위해 한 경매회사에 갔는데, 그곳의 도록(圖錄)에서 박수근의 작품이 84만2000달러에 팔린 것을 본 거예요. 딸아이가 제게 물었지요. ''아빠, 우리 집에 이런 비슷한 그림들 있지 않아요?'' 도록을 보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우리 집보다 비싼 그림들이 우리 집 지하실에 있다니, 어떻게 해야 하나, 보험을 들어야 하나, 은행에 갖다 맡겨야 하나, 그러다가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당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릭스씨는 변호사에게 ''빨래터''를 포함해 5점의 작품을 판매해 달라고 맡겼다. 그 중 ''빨래터''는 서울옥션에 출품됐고 낙찰가 45억2000만원으로 국내 경매 최고 기록을 세웠다. 릭스씨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내와 딸이 너무 어려워서 그의 그림들을 모두 팔았어요. 예전에 내가 박수근을 도왔는데, 지금 박수근이 나를 도왔습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그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얼마나 값진 것을 가졌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꽤 되리라 확신해요. 당시 반도호텔 안에 외국 회사가 많았기 때문에 박수근 그림을 산 외국인이 많았어요. 박수근은 말이 없는 젠틀맨이었어요. 늘 허름한 옷차림에 안경을 쓰고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지요."
존 릭스씨는 ''빨래터'' 위작 공방을 계기로 신분을 드러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위작 시비가 있었다는 것을 변호사를 통해 들었고, 제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터넷으로 한국의 뉴스를 보고 슬펐어요. 제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서요."
''빨래터''가 위작이라고 주장한 측에서는 액자가 흰색인 것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릭스씨는 이에 대해 "우리 딸이 1970년대에 ''흰 벽에는 흰 액자가 어울린다''며 원래 액자에 흰 칠을 덧칠했다. 나는 깜짝 놀랐는데, 그림에는 손을 안 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내가 예전에 며느리한테 박수근 그림을 줬는데 며느리가 싫다고 안 가져갔다.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다"며 소리 내서 웃었다.
그는 반세기 뒤 한국 최고의 화가가 될 박수근을 어떻게 일찍 알아볼 수 있었을까? "전 그냥 박수근 그림이 소박하면서도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어서 좋았어요. 전 미술에 소질은 없지만 감동 받을 줄은 압니다. 그런데 많은 나라를 가봤지만, 미술관에 걸린 대가들의 그림을 보고 박수근 그림에서만큼 감동을 받지 못했어요. 전 박수근 그림의 독특한 표면이 특히 좋아요."
그는 "한국인들이 박수근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를 내가 안다. 전쟁 이후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했다. 눈에서 눈물이라도 떨어질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지붕이 없는 집에 살고, 굶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이미 전쟁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요. 박수근의 그림은 그런 모든 것을 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