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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미술계동정

예술행정가의 외길인생[이종덕사장]

이종덕

예술행정가의 외길 인생

글│이선화 기자

성남아트센터. 아직은 익숙치 않은 공연 기관의 명칭일 수 있다. 그러나 성남아트센터를 이끄는 사령탑의 이름을 듣게 되면 그 생경한 아트센터에 대한 느낌은 이내 무색해지고 만다. ‘공연예술계의 대부’ ‘예술행정 CEO 1세대’ ‘무대예술의 산증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은 문화예술계의 어른, 이종덕 사장이 성남아트센터를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덕 사장은 1963년 문화공보부(지금의 문화관광부) 공연과에 입사했다. 보도과장, 종무담당관, 정책연구관 등의 직책을 거치며 문화공보부에서 20여 년의 세월을 함께 한 그는 이후 88서울예술단 단장을 거쳐 예술의전당 사장,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 2005년 10월 개관한 성남아트센터에서 예술행정가로서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길을 걸어 온 이종덕 사장의 이면사를 되짚어 본다.

문화예술계의 마당발, 그가 사는 이 곳

“당연히 카리스마죠.” 성남아트센터의 운영진들은 이종덕 사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너 나 할 것 없이 카리스마를 꼽는다. 단단한 체구의 다소 무뚝뚝한 외모로 보건데, 이종덕 사장의 첫인상은 딱딱한 느낌의 행정가다운 면모에 가깝다. 그러나 몇 차례의 만남을 통해서 기자는 화려한 공연예술의 뒷무대에서 묵묵히 예술행정을 펼쳐 온 그의 한결 같은 열정과 따스한 인간미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이종덕 사장이 예술행정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학위를 취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축적된 순도 100퍼센트 실무 경험은 칠순이 넘은 그를 여전히 쉬지 못하게 한다. 이는 어찌 보면 우리 예술행정계의 현실상을 반영하는 것과 동시에 이론과 실제의 커다란 간극을 역설하는 측면이기도 하다. 훌륭한 예술을 완성 짓기 위해서는 그것을 유지, 관리하고 이끌어가는 제반 활동들이 전제되어야 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종덕 사장은 예술행정이야말로 예술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역할에 다름 아니라고 피력한다. 해석인 즉, 예술행정이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밑그림 작업으로, 그것의 실체와 활약상이 두드러지지 않는 특성을 가진 영역이라는 뜻일 게다.
“항상 긴장 상태에 있어야 하지.” 물리적인 나이와 사회적 위치로 보건데,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할 법도 한데 이사장은 하루 수차례의 공연이 열리는 아트센터에서 라이브 공연예술이 태생적으로 갖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매번 경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자년(戊子年) 새해를 앞두고 연말 공연가는 스타급 출연진은 물론 눈길을 사로잡는 공연 내용으로 관객몰이에 나섰다. 이런 시기에 지난 1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공연 중 화재가 발생해 수천 명의 관객이 대피했다는 아찔한 소식이 들렸다. 곧바로 예술의전당 측은 내년에 잡힌 공연 일정의 상당수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큰 후유증을 남긴 이번 사건은 공연 관계자는 물론 관객에게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단 한 문화 공간만의 문제로 축소 해석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공연 마무리 시까지 물적 정신적 지원 및 안전 대책이 항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사장 역시 이를 강조하며 덧붙여 인간적인 배려를 예술행정인이 감내해야 할 최우선 덕목으로 꼽았다.
“이 시대를 사는 예술인들은 바야흐로 예술 문화의 꽃을 화려하게 피워야 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해. 예술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우는 일, 그 꽃에 물과 거름을 주는 것이 바로 예술 행정이지.” 주목 받는 주체이기보다는 묵묵히 훌륭한 예술인을 발굴 육성하는 후원자로서의 입장이다. 한국의 디아길레프(Sergey Pavlovich Diaghilev). 러시아 출생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며 안나 파블로브나, 바슬라프 니진스키, 모리스 베자르 등을 스타로 키워낸 디아길레프를 이종덕 사장은 역할 모델로 삼는다. 해외에 거주하는 능력 있는 문화 예술인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 또한 그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지난 200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수진이 소속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카멜리아의 여인> 공연 역시 이종덕 사장의 추진으로 성사된 일례다. 그러나 과거 서울의 주요 공연장과 비교할 때 현재 성남아트센터의 입지 및 지리적 조건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때문에 좋은 공연에는 관객이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믿음으로, 이사장은 수준 높은 컨텐츠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2007년에는 제1회 성남청소년국제관현악 페스티벌을 통해 장한나를 지휘자로 데뷔시켰는가 하면, <파우스트><마술피리> 등 성남아트센터에서 오페라를 자체 제작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성남아트센터는 서서히 그것의 입지를 알리며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

씨 뿌리는 초심의 마음으로

이종덕 사장의 직무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구상 시인의 싯구가 새겨진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꽃자리/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한편, 공연장 무대를 실시간 바라볼 수 있는 폐쇄회로 TV 옆으로 강수진의 그 유명한 발가락 사진도 시선을 끈다. 현재가 비록 고단할 지라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뚝심을 가지고 헤쳐 나가야 함을 상징하는 표지(表識)들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접한 공연문화에 빠져 문화예술계와 일편단심 변치 않는 외길 인생을 걸어 온 그는 짧은 인터뷰 시간 동안 지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한 표정이었다. 끈끈한 인연으로 그와 변함없이 한솥밥을 먹는 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재는 그들이 훨훨 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그의 말을 듣자니, 왜 그 주위에 사람이 모이는 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종덕 사장은 또한 예술의전당 시절 부하 직원으로 있던 이들이 이제는 전국의 대표적 예술공연 기관을 선두 지휘하고 있다고 말하며 뿌듯해 하기도 했다. 경기도 문화의전당 박인건 사장, LG아트센터 김의준 대표, 김해 문화의전당 김승업 사장, 경남문화예술회관 곽정석 관장 등이 그들이다. 공연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인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개별 문화 공간의 이익만을 좇지 않고 우리나라 전체의 공연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거시적 안목에서 비롯된 것이다.
좋은 인재는 물론 수준 높은 공연, 관객에 대한 홍보 역시 이종덕 사장은 ‘씨를 뿌리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다가간다. 또 다른 새해와 조우하려니, 이내 자신이 없어지는 우울함이 몰려온다. “많은 일을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자문해 본다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뚜벅뚜벅,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문화예술계를 온몸으로 아끼는 이종덕 사장의 외길 인생에서 희망을 보고 마음을 추스린다. | 이선화 기자

이종덕 1935년 출생. 연세대 사학과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고위정책과정 수료 및 서강대 영상대학원 CEO PI 전략과정 수료. 88서울예술단 단장, 서울예술단 이사장, 예술의전당 사장, 세종문화회관 사장 및 단국대 산업경영대학원 주임교수 역임. 현 성남아트센터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