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연 작품전
Exposition de Paek, Ji - Youn
[portraits(P06T001)부분]_60.9x76.1 cm_자가인화한 사진위에 아크릴채색_2006
2009년 2월 2일 ~ 2월 27일
부산 프랑스문화원 전시실
(우601-836)부산시 동구 초량3동 1145-11 tel:051-465-0306
초대일시: 2월 6일(금), 저녁6:30
한 사람 개인에게는 그 사람의 생김새 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기호, 체취, 말투, 특유의 표정 등 그 사람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이 있다. 사물에 형태나 질감에 대해 독특한 미감과 느낌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이러한 특징적인 것들로 인해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인상이나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portraits(06P5001-3)_각91 x 60.6 cm_종이에 먹, 오일파스텔_2006
나는 내 가족이나 친구들, 버스나 지하철 안,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친 사람들의 이러한 특징정보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특징적인 정보가 있지만, 공동의 공간에서 지나쳐가는 타인에게서는 정보가 전혀 없다. 그래서 타인의 정보수집은 표정이나 행동에서 읽혀지는 느낌에 주목하고, 틀릴지도 모르는 추측에 기댄다. 한 사람이 가진 특징은 처음에는 개인의 정보로 입력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통되는 특징을 지닌 이들끼리 묶여져 하나의 유형이 된다. 내 그림에 나타난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의 유형이 된 사람들이다.
portraits(F08s001-4)_각 18 x 25.5 cm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8
개인의 독특한 특징정보에서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그림 속 인물들은 특정한 개인이 아닌 성격, 분위기 같은 것들이 모인 하나의 기호화된 인간상이다. 일그러지고 비틀어진 변형의 얼굴은 익명의 얼굴인 동신에 포착 가능한 일상의 표정들을 담고 있다. 타인에게서 느껴지는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정– 즐거움, 질투, 연민, 분노 등이 내포된 감정들-이 얼굴형상과 중첩되어 나타난다.
portraits_각 42 x 59.4 cm_종이에 오일파스텔_2008
작업의 과정은 잼(jam: 재즈음악에서 이루어지는 즉흥 연주) 연주와 흡사하다. 두 명 이상의 연주자가 모여 이성은 잠시 접어둔 채, 현장의 느낌과 같이 연주하는 상대의 교감에 집중해서 자율적으로 연주를 이어가는 방식이 잼연주의 핵심이다. 「portrait」라는 얼굴형상을 테마로 한 가운데, 나(붓질을 하는 행위자)와 캔버스(그려지는 공간), 물감(흔적으로 남겨지는 매체)으로 선과 색의 즉흥적 연주를 한다. 젯소와 아크릴물감을 일정비율 섞어 바탕을 칠한 뒤 진행되는 작업은 선의 방향과 색의 선택이 매 순간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내 그림 속의 선들은 형상의 닮은 꼴을 목적으로 하는 ‘~처럼 보이는’(seem)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감정을 이끌어내서 붓끝으로 가해지는 과정, 즉 붓의 궤적으로 나타난 행위자체가 ‘존재’(be)하는 것이 목적이다.
portraits_각 42 x 59.4 cm_종이에 오일파스텔_2008
작업의 시작이 자율적으로 전개되는 방식이었다면 그 이후 진행되는 ‘형상 그리기’는 약간 의식적인 행위가 수반된다. 상황과 대상의 느낌에 의존해 즉흥적으로 그리는 작업의 후반부에는 작업을 진행하는 행위의 주체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눈, 코, 잎을 구별하게 하고, 그로 인해 감정이 드러나게 보이는 얼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탄생된 얼굴 형상은 내가 느끼는 타자들의 초상(portrait)이자 혹은 나 자신의 초상(self-portrait)이다. 타인에 대한 슬픔과 연민, 나에 대한 미움과 자기혐오 같은 복합적인 감정으로 점철된 그들과 나의 얼굴 제목은 단지 얼굴의 겉모습이나 표정만을 지칭하는 Face(얼굴)가 아닌 Portrait(초상화)이다. 본래 portrait라는 단어는 인물사진이나 초상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인물사진에는 얼굴이나 모양을 있는 그대로 찍는 것이 portrait지만 여기에는 얼굴을 닮게 그리는 초상화에서와 같이 일종의 분위기, 또는 인물의 성격이나 생활, 인간성을 표현하는 것 등 다양한 것들을 포함한다. 단지 사물의 표면만을 지칭하는 의미가 아닌 사람의 내적인 모습이나 그리는 사람의 감정까지 포함된 제목을 붙이고 싶었고, 이는 내가 작업에서 의도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 백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