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미술수업 듣듯 대작과 만난다… 11월7일부터 ‘17∼18세기 서양미술거장전’
188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미술관을 찾았던 화가 반 고흐는 렘브란트의 '유대인 부부'라는 작품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부가 온화하게 웃으며 살며시 손을 잡고 있는 이 그림은 당시 외로움에 허덕이던 고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전체적인 빛과 그림자의 오묘한 조화가 고흐의 마음을 움직였다. 바로크 시대에도 빛과 그림자를 강조해 그린 그림이 있었지만, 주로 사물의 입체감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인 렘브란트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탕자의 귀환' 등의 작품에서 보듯 그림 속 인물의 심리묘사에 빛과 그림자를 이용했다. 방탕하게 살다 집을 찾아온 아들과 그를 용서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명암 속에 담긴 것이다.
7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양미술거장전'은 렘브란트를 비롯해 17∼18세기 서유럽 거장들의 작품 76점이 전시된다. '렘브란트를 만나다'라는 부제에 걸맞지 않게 그의 회화작품은 고작 1점뿐이다. 대신 그의 판화(에칭) 26점이 걸린다. 또 루벤스, 브뤼헐, 반다이트, 과르디, 파니니, 부셰, 푸생 등 당대 최고 화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은 모두 러시아 국립푸시킨미술관에서 가져온 것으로 아시아 순회전이 아니라 한국전만을 위해 기획된 것이다.
아무리 몸이 루브르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있다 해도 산책하듯 슬쩍 지나가선 유명 미술관에 갔다 왔다는 것밖에 남는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유명 작품을 봤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건드리는 한두 작품을 발견하는 것.
다행히 이번 전시는 미술사적 지식이 거의 없어도 관람객이 주체가 되어 편하고 즐겁게 감상하자는데 맞춰졌다. 이를 위해 전시장에 설치된 것이 HD 화질로 제작된 대형 영상이다. 화면에 그림을 크게 확대한 후 작품 속 표정과 눈빛에 맞춘 편집 영상으로 중요한 부분을 클로우즈업해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림 속 숨은 이야기를 뽑아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렘브란트의 '나이 든 여인의 초상'의 경우 손을 클로우즈업하는데 굳게 맞잡은 두 손이 꽉 다문 입술 이상으로 많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렘브란트의 판화특별전이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보통 판화는 회화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판화야말로 작가의 영감이 가장 잘 살아있다"며 "회화는 여러 번 덧칠하는 과정에서 수정되지만 드로잉이나 판화는 한 번에 생각난대로 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렘브란트의 판화에는 작가의 인생이 담겨 있다. 라인강 가에서 제분소를 운영하며 가난하게 살던 그는 부잣집 여인과 결혼했다가 사별하고, 노년에는 그림을 팔아 번 돈을 탕진하고 수용소 생활을 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이번에 선보이는 판화에는 그의 자화상 4점이 있다. '헝클어진 머리의 렘브란트'는 20대의 자유분방함, '깃털이 달린 벨벳 모자를 쓴 자화상'은 명성을 떨치던 30대의 위풍당당함, '창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렘브란트'에서는 거만함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그림을 그리는 40대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내년 2월26일까지(02-2113-3400).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188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미술관을 찾았던 화가 반 고흐는 렘브란트의 '유대인 부부'라는 작품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부가 온화하게 웃으며 살며시 손을 잡고 있는 이 그림은 당시 외로움에 허덕이던 고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전체적인 빛과 그림자의 오묘한 조화가 고흐의 마음을 움직였다. 바로크 시대에도 빛과 그림자를 강조해 그린 그림이 있었지만, 주로 사물의 입체감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인 렘브란트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탕자의 귀환' 등의 작품에서 보듯 그림 속 인물의 심리묘사에 빛과 그림자를 이용했다. 방탕하게 살다 집을 찾아온 아들과 그를 용서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명암 속에 담긴 것이다.
7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양미술거장전'은 렘브란트를 비롯해 17∼18세기 서유럽 거장들의 작품 76점이 전시된다. '렘브란트를 만나다'라는 부제에 걸맞지 않게 그의 회화작품은 고작 1점뿐이다. 대신 그의 판화(에칭) 26점이 걸린다. 또 루벤스, 브뤼헐, 반다이트, 과르디, 파니니, 부셰, 푸생 등 당대 최고 화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은 모두 러시아 국립푸시킨미술관에서 가져온 것으로 아시아 순회전이 아니라 한국전만을 위해 기획된 것이다.
아무리 몸이 루브르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있다 해도 산책하듯 슬쩍 지나가선 유명 미술관에 갔다 왔다는 것밖에 남는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유명 작품을 봤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건드리는 한두 작품을 발견하는 것.
다행히 이번 전시는 미술사적 지식이 거의 없어도 관람객이 주체가 되어 편하고 즐겁게 감상하자는데 맞춰졌다. 이를 위해 전시장에 설치된 것이 HD 화질로 제작된 대형 영상이다. 화면에 그림을 크게 확대한 후 작품 속 표정과 눈빛에 맞춘 편집 영상으로 중요한 부분을 클로우즈업해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림 속 숨은 이야기를 뽑아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렘브란트의 '나이 든 여인의 초상'의 경우 손을 클로우즈업하는데 굳게 맞잡은 두 손이 꽉 다문 입술 이상으로 많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렘브란트의 판화특별전이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보통 판화는 회화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판화야말로 작가의 영감이 가장 잘 살아있다"며 "회화는 여러 번 덧칠하는 과정에서 수정되지만 드로잉이나 판화는 한 번에 생각난대로 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렘브란트의 판화에는 작가의 인생이 담겨 있다. 라인강 가에서 제분소를 운영하며 가난하게 살던 그는 부잣집 여인과 결혼했다가 사별하고, 노년에는 그림을 팔아 번 돈을 탕진하고 수용소 생활을 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이번에 선보이는 판화에는 그의 자화상 4점이 있다. '헝클어진 머리의 렘브란트'는 20대의 자유분방함, '깃털이 달린 벨벳 모자를 쓴 자화상'은 명성을 떨치던 30대의 위풍당당함, '창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렘브란트'에서는 거만함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그림을 그리는 40대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내년 2월26일까지(02-2113-3400).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