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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국내작가

현대미술,단순함에서 빚어진 최고의 미학[이우환]

현대미술,단순함에서 빚어진 최고의 미학[이우환]
-한국 '미니멀리즘' 대가 이우환의 점, 선, 면 그리고 여백


얼마 전에 옥션M에서 3회 미술품경매가 개최됐다. 1,2부로 나눠진 이번 행사에서는 ‘미술품 자선경매’가 개최됐는데 백영수, 이우환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작가와 크리스토와 같은 해외 유명작가의 작품이 함께 출품됐다.

자선 경매에서 가장 비싼 미술품은 미국 출신 작가 야바체프 크리스토의 판화인‘더 게이트(The Gate)/오버 더 리버(Over The River)’로 1천만∼1천200만원 선에서 낙찰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의외로 790만원에 낙찰, 지역미술시장이 침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도 하였다.

이같은 지역 미술 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유독 높은 낙찰률을 보인 장르가 있다. 바로 현대미술.

자선 경매에서 최고가 낙찰을 받은 크리스토를 비롯해 메이저 경매에서도 최고의 낙찰가를 기록한 작품은 20호짜리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였다. 3억7천500만원에 낙찰된 이우환의 작품은 첫 회 경매부터 지금까지 모두 최고가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과연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이우환의 작품에 열광 하는 것일까? 세 번째 현대미술 들여다보기에서는 한국 미니멀리즘의 대가 이우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우환 그는 누구인가

이우환은 국제무대에서 동서미술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이론가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 미술평론가로 등단, 당시의 모노하(物派) 태동을 주도하고 창작과 비평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그의 작품세계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현대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사상과 작업에 대한 해석과 검증은 작가 자신에 의해 그리고 그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다른 작가들과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검토하면서 사상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점 또는 선으로 이뤄진 그의 작품 속에서 미니멀한 간결함은 부여해 주지만 그러한 단순한 이미지들에게서 오히려 보는 이들로부터 복잡한 사고를 느끼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선과 점들이 어찌 보면 통일성 있고 간결한 것 같지만 그러한 선과 점들이 현란하게 사방에 펼쳐져있어 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것이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특징이다.

이우환은 1936년 경남 함안 에서 태어나 사실상 한국의 전통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어린 시절 그는 서당에서 소학을 공부하기도 했고, 문인으로 알려졌던 황동초로부터 유년기를 통해 시서화를 배웠다. 중, 고교 시절 이우환이 관심을 가진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치 보이는 것처럼 음으로 짜 올리는’ 음악에 대한 관심이었으며, 끊임없는 독서 그리고 문학 창작이었다.

1956년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하던 해 여름, 숙부 병문안 차 일본에 간 이우환은 1961년 니혼대학 철학과를 편입해 졸업했는데, 그가 철학을 선택한 이유는 미학이나 사회 사상사를 튼튼하게 알아 놓아야 나중에 무엇이든 제대로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독자적인 사유체계와 비평방식은 재일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전환기 일본현대 미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고교 교과서에 그의 산문이 실릴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조응 - 이우환은 1990년대부터`조응’시리즈를 선보였다. 커다란 획이 즉각적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이 시리즈의 특성은 아주 적은 수의 획만을 가진 공간을 주제로 한다는 점이다. 그는`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의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있는데, 시작과 끝이 분명한 가운데로 뻗은 이 선은 화면 전체에 긴장감과 동세를 부여한다.


1967년 도쿄 사토화랑에서 개인전 이후 전위적 예술 활동을 추구하면서 68년 부터 일어난 *모노하(物派) 운동의 중심적인 인물로 창작과 비평에 있어서 국제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69년 국제청년미술가전에서 일본문화포럼상을 수상했으며 그 해 미술출판사 예술평론상 공모에 ‘사물에서 존재로’가 입상했으며, 이후 비평집 ‘만남을 찾아서’ 등 다수의 평론을 발표했다. 7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과 이론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당시 한국의 전위운동과 단색주의 회화에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비평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우환의 점,선,바람

그의 작품 세계를 크게 나누어 보면 점, 선, 바람, 조응, 관계 시리즈로 펼쳐져 있다.

선으로 부터 - `선으로부터’는 서구의 미니멀리즘을 동양적 사고와 감성에 근거하여 재해석한 작품이다. 밑칠을 하지 않은 커다란 캔버스 위에 청색의 선들을 반복적으로 그어 내리는 과정 속에서 작가의 존재는 무의미해지고 궁극적으로 완성된 작품은 탈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먼저 ‘점에서(form point)’시리즈는 존재하는 것을 점으로, 산다는 것을 선으로 함축하고 점과 선의 나타남과 사라짐으로 탄생과 소멸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의 반복된 행위를 통해 시작과 끝이 부재하는 우주의 순환성과 무한성을 암시하는 방법론은 시적이며 직관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일종의 수신에 가까운 행위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작가가 성취하는 세계와의 어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선에서(form line)’ 시리즈는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 모노하 시기에 주로 조각 작품을 제작해 왔던 이우환은 73년께부터 일반에게 잘 알려진 ‘점에서’‘선에서’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조각 작품이 사물과 사물의 관계, 그것을 경험하는 공간에서의 만남을 실현하는 장이자 구조로서 캔버스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붓끝에 묻은 안료가 소모될 때까지 점을 찍고 선을 그으면서 그것이 계속 반복되는 행위를 보여주는 이시기 작품들은 엄격한 통제를 통해 일종의 자기 수련의 자세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작가의 신체적인 행위와 캔버스에 나타난 선하나, 점의 위치, 방향성 붓 자국의 나타남과 사라짐 그리고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의 조응 관계는 작가에게 중요한 요소가 된다.

80년대 초반 작가는 작업을‘바람에서’ 시리즈로 옮겨가면서 보다 자유롭고 역학적인 질서로 이행해 가기 시작하는데,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바람의 존재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바로 주변의 공명과 울림, 촉각 등에 의해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시기 점이나 선은 바람같이 다양한 방향성을 부여하면서 공간속에 상하 좌우로, 전면적으로 옮겨 다니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엄격한 규제로부터 벗어나려는 듯 자율성의 진폭은 커지면서 붓 자국은 자유롭고 거침이 없으며 점과 선의 구분도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점과 선은 점차 해체되어 마치 무작위의 행위처럼 바탕과 함께 호흡하려는 자세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조응(correspondance)’ 시리즈는 90년대 이후에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조금씩 변화를 시도해 큰 캔버스에 생기로 찬 붓 터치로 한 개 또는 몇 개의 점을 찍고 대부분의 넓은 공간을 공백으로 남겨지는데, 여기에서 각각의 점은 그 크기 및 위치, 간격, 획의 방향성에 따라 다른 점과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조응하고 캔버스 전체에 강한 존재감이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캔버스의 빈 공간, 여백은 더욱 강조되어 외부와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람과 함께 -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바람과 함께’라는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를 형상화하면서 동시에 바람으로 대변되는 물질의 속성과 자연의 원리를 함께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는 함축성 있는 한점 한점을 통해 캔버스 공간에서의 조응과 함께 주변으로 확장되는 울림의 공간을 구현 한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의 세계와 관계하고 싶다’는 작가의 입장처럼 여백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최근까지 일관되게 ‘관계항’이라고 이름 붙인 이우환의 조각 작품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면서 자연속의 어디쯤엔가 나뒹굴고 있을 돌과 산업재료로 사용하기 위한 철판을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에 다양한 방식을 설치한 것들이다. 얼핏보면 초현실주의의 우연한 만남을 연상시키지만 작품의 근본은 사물을 대하는 작가 특유의 동양적 사유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돌과 철판이 자연과 인간, 타와 타자를 연결 짓는 매개로서 서로에게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1970년대 한국현대미술에 있어 단색조 회화와 관련해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와 구분되는 한국적 사유방식에 관한 비평적 논의의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던 이우환의 작품은 1970년대 중반까지 국내 작가들에게 모노크롬은 크게 의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에 이우환이 제기한 모노파(物派)의 입김을 강하게 받고 있었으며, ‘이우환 주의‘라는 말이 나돌고 그 아류들이 생겨날 정도였으니 그 열풍이 얼마나 드셌는지 짐작케 한다. 그 열풍은 어느새 한국 화단에도 불어와 여기저기서 이우환의 작품을 선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양의 사상과 논리를 수용하면서도 동양적 사고와 감성으로 풀어 나가는 그의 예술론은 한국 현대 미술의 창작과 비평에 있어서 중요한 토대가 되었고, 이미지나 상징성을 배제한 그의 비표현적 예술 방식은 재현이나 표현 미학에 익숙한 작가들에게 예술에 관한 사고와 개념의 폭을 넓히는데 크게 기여했음을 볼 수 있다.

*모노파(物派):1960년대 말부터 70년대에 걸쳐 일본에 나타난 미술경향으로 모노란 물, 물건이란 뜻의 일본어. 나무, 돌, 점토, 철판 등의 소재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직접 제시하여 모노와 모노, 모노와 인간간의 관계에 주안점을 둔 작품으로 ‘물질, 물체=물건’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내려고 한 것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