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 속에서 패션을 읽다 |
샤넬, 미술관에 가다 / 김홍기 지음 / 미술문화 |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 |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 걸려있는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의 1923년작 ‘코코 샤넬의 초상’에서 샤넬은 검정 스카프를 두른 채 느긋한 표정으로 패션 디자이너다운 감각을 한껏 드러낸다. 코르셋, 페티코트처럼 신체를 옥죄던 1920년대 여성 패션시대에 신축성 있는 남성용 저지 소재의 편안한 옷을 선보였던 샤넬은 미술에서 패션 아이디어를 끌어낸 패션리더다. 미술관을 드나들며 미술과 교감했던 샤넬이 그랬듯 저자는 복식박물관과 미술관 나들이를 통해 미술을 통한 복식사의 재조명을 시도한다. 초상화 풍속화 등 그림 속 인물들의 패션을 읽고 분석하는 한편, 당대의 패션 흐름을 미술품에서 짚어낸다. 보티첼리의 1486년 작 ‘비너스의 탄생’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직물의 감청색 꽃무늬를 통해 봄의 생동감뿐아니라 탁월한 디자인과 색감을 재확인한다. 또한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줄무늬가 중세 이후 악마의 무늬로 혹평을 받았다며 크라나흐의 1508년 작 ‘성 캐서린의 순교’ 중 처형자 옷에서 삼색줄무늬를 클로즈업한다. 패션과 미술이 결합된 주목할 만한 대상으로 초상화를 지목한 저자는 화가의 패션소품처럼 여겨지는 베레모를 연구, 분석한다. 평생 70여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린 렘브란트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베레모를 왜 화가들이 즐겨 쓰는지. 베레모는 시적 영감과 상상력의 상징이자, 한동안 유럽에서 대학과정 졸업식 때 반드시 착용해야 했던 일종의 학식 표시였다고. 저자는 네덜란드 미술사가 마리케 드 빈켈의 주장을 인용,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모사하던 화가들 사이에 ‘렘브란트 패션 따라잡기’가 유행하면서 베레모가 자연스럽게 화가의 소품처럼 돼 버렸다고 설명한다. 렘브란트가 초기작에서 베레모 차림의 자화상을 유난히 많이 그렸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대 화가의 초상화를 통해 로로코 시대 패션리더로서 면모가 전달된다. 서양미술사에서 미모의 여성 화가로 손꼽히는 비제 르브륑은 모델 같은 미모와 패션이 돋보이는 자화상을 비롯, 친밀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에 로로코 시대의 패션을 담아냈다. 사치와 방탕한 생활 끝에 결국 단두대에 올랐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짧은 스커트, 젖 짜는 소녀 같은 복장으로 그려진 초상화엔 왕비의 또 다른 일면이 담겨있다. 이 밖에 마네의 1869년 작 ‘발코니’ 속 남자 목에 두른 레가타에서 넥타이의 원형을 발견하는 한편, 담배 파이프가 화면 중앙에 들어선 1960년대 중반 르네 마그리트의 ‘성실’ 속 남자의 빨간 넥타이에선 남성의 패션욕구를 읽어낸다. 베르메르 그림 속 임산부복, 19세기 전반부 복식을 섬세하게 묘사해낸 앵그르 등, 특정 작가와 미술품에 얽힌 일화가 흥미롭다. 유럽인을 매료시켰던 터키, 중국, 일본 패션의 영향이나 장갑, 구두, 부채 같은 패션소품에 반영된 에로스적 요소 등, 상통하는 미술과 패션의 변화와 흐름이 볼거리 자료와 더불어 펼쳐진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