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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미술전시회

[미술전시]“최소한의 행위로 세계 보여주고싶다”

“최소한의 행위로 세계 보여주고싶다”
일본의 현대미술 거장 세키네 노부오 개인전


창조는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저는 그저 물체를 옮겨놓을 뿐이에요.”

일본 조각가 세키네 노부오(關根伸夫·66·사진)는 시종 겸손했다. ‘모노파(物派)’의 신호탄이 된 ‘위상-대지’의 작가인데도 말이다. 모노파는 1960∼70년대 일본에서 시작, 세계 미술계를 강타한 현대미술운동이다.

서울 이태원동 표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을 위해 방한한 그는 “이 세계는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뭔가를 창조한다는 근대적인 개념에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창조가 아니라 위상변환, 이동 뿐이에요”라고 거듭 말했다. 이는 모노파 운동의 핵심정신이기도 하다.

그는 68년 일본 고베 수마리큐 공원의 땅을 원통형으로 파내고 그 옆에 집채만한 흙기둥을 세웠다. 예술이라 하기엔 너무 자연 그대로인 이 ‘위상-대지’는 일본 미술계에 충격을 줬고, 그와 뜻을 같이한 예술가들이 모여 모노파라는 경향을 형성했다. 나무·돌·점토·철판·종이 등 물체에 거의 손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제시하며, 물체에서 존재의 의미, 존재간의 관계 파악에 주력했다. 특히 철학도 출신의 이우환(72)은 이 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세웠다.

세키네 노부오는 “위상-대지를 발표한 직후 이우환을 만났다. 모노파 운동이 활발했을 당시 친구들을 끌고 이우환의 작업실을 자주 찾아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우환은 평론가를 능가하는 철학적 사고를 하는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70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 작가로 선정, 2년간 유럽 곳곳서 전시를 하며 견문을 넓혔다. 이후 귀국해 일본에 ‘환경미술연구소’를 세워 당시로서는 새로운 영역인 환경미술에 집중했다. 최근 들어 ‘위상-대지’의 맥을 잇는 ‘위상-회화’를 발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도 24K 금박을 다섯 겹 배접해 만든 판을 ‘위상-대지’ 식으로 파내고 옮겨낸 평면 작업을 여럿 내놨다. 금박은 빛의 흔들림에 어울려 흔들렸고, 어둠 속에서도 은은히 빛을 발했다. 구멍나고, 솟아오른 ‘위상-회화’를 가리키며 그는 “최소한의 행위로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에 그는 93년 세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본관 앞 분수 조형물 ‘무지개’도 돌아봤다. “오랜만에 제 조각을 보니 옛 애인을 만난 듯 설렙니다”라고 쑥스러워 했다. 좌우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나온 물줄기는 가운데서 만나 무지개를 이루고, 물은 넘쳐 아랫단으로 조용히 흘러 내린다. 15년 내내 그랬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아치가 바로 무지개입니다. 동서양을, 한일을 연결시키겠다는 꿈을 나타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다음달 13일까지다. (02-543-7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