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유목민 시대` 박물관이 통째로 옮겨다닌다 [중앙일보]
세계일주 ‘모바일 아트’ 홍콩서 첫 이륙
새하얀 ‘우주선’ 안에 들어갔다. 우선 마이클 린이 만든 바닥타일을 밟은 뒤 로리스 체키니의 크리스털 조형물을 지나게 된다. 이어 다니엘 뷔렝의 줄무늬 문을 통과해 쭈그리고 앉은 채 물웅덩이에 비친 건물(레안드로 에를리히의 설치)을 들여다 본다. 여정은 이불의 ‘광년(Light years)’이 지배하는 방을 거쳐 실비 플러리의 거대한 샤넬백 설치를 보고, 오노 요코의 소원나무에 각자의 꿈을 적어 묶고 나오면서 완결된다.
소요 시간은 35분 남짓. 관객들은 홍콩 스타페리 선착장의 주차장에 불시착한 ‘UFO’에서 저마다 꿈을 꾸고 나온다. 그래서 이 전시를 감상하는 것은 잠시 동안 ‘무중력’을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선정 작가들은 샤넬이 1955년 세상에 내놓은 퀼팅백(체인과 마름모꼴 누빔 패턴이 특징)을 모티브로 저마다 이야기를 만들었다. 스위스 작가 실비 플러리는 럭셔리 상품에 대한 소유욕에 관심을 보인다. 거대한 샤넬백 안에 담은 영상은 슈팅게임을 닮았다. 총을 든 여성이 끊임없이 샤넬백을 명중시켜 박살낸다.
이불은 ‘인간’ 샤넬에 주목했다. 희게 빛나는 실리콘 구와 샤넬백의 체인으로 만든 대형 설치 ‘광년’이다. 거대한 생물처럼 웅크리고 있는 ‘광년’은 자신의 모습을 벽·바닥·천장에 비추며 자기복제를 진행한다. 이불은 “디자이너 샤넬의 일상을 연구하면서 ‘강박’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 대해선 “자기 성향이 뚜렷한 작가들을 엮어 이야기를 어우러지게 한 큐레이터의 능력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미술인가, 공연인가
미술 전시지만 눈과 귀를 동시에 자극한다. 전시는 한 편의 공연, 혹은 영화다. 입구에서 받은 MP3 플레이어의 소리를 배경으로 작품 20점이 저마다 연기하는 새로운 형태를 즐기는 형식이다. 작품들이, 그리고 사운드워크가 일관되게 제시하는 메시지는 ‘삶은 형태의 역사’다. MP3에 담긴 효과음과 음악, 시적인 목소리가 해당 작품을 적절히 뒷받침한다.
예컨대 일본 작가 타바이모의 거대한 우물 모양 설치 앞에 서면 “우물 밑바닥에는 항상 비밀이 있습니다”라는 속삭임이 MP3 기기에서 나오고, 그 사운드는 우물 밑에서부터 떠올라오는 작품의 흑백 이미지와 예사롭지 않게 융합된다. 기존의 전시장 오디오 가이드에서 한층 진일보한 사운드워크(Soundwalk)다.
이 같은 사운드워크는 미술감상이란 행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하지만 맹점도 있다. 때론 사운드워크가 전시의 ‘조연’에 그치지 않고, 전시 자체를 지배하는 느낌을 준다. 일례로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비디오 설치는 MP3 플레이어와 별도로 감상하는 편이 낫다.
‘공연’의 주연은 단연 전시관 자체다. 백색의 빛나는 파이버글라스 500여 조각으로 이뤄진 건물은 가로 45m, 세로 29m, 면적 700㎡(약 200여 평) 규모다. 넓어졌다가 좁아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자연채광의 홀에 도달하는 등 다양한 공간이 연출된다. 미지를 여행하는 기분마저 든다. 이란 출신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현재 영국서 활동 중이다. 국내에선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설 디자인플라자를 설계했다.
‘모바일 아트’는 결과적으로 야경으로 이름난 홍콩에 볼거리 하나를 더 추가했다. 홍콩 전시는 4월 5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www.chanel-mobileart.com)에서 예약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세계일주 ‘모바일 아트’ 홍콩서 첫 이륙
모바일 시대, 박물관도 움직인다. 관객을 찾아 전 세계를 일주한다. 21세기 문화 키워드 중 하나는 ‘유목’. 길목 좋은 곳에 멋지게 자리 잡았던 박물관이 ‘이동시대’로 접어들었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움직이는 박물관 ‘모바일 아트’다. 2년 남짓한 준비를 마치고 지난달 26일 홍콩서 첫 공개됐다.
‘모바일 아트’는 2004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 흰 전시관 안에는 한국의 이불을 비롯해 아라키 노부요시·실비 플러리·수보드 굽타·오노 요코 등 세계 각국의 저명작가 20명이 만든 작품이 놓여 있다. 박물관은 미확인비행물체(UFO) 혹은 조가비를 닮은 유려한 곡선 형태다. 홍콩에서 발진한 박물관은 앞으로 2년간 도쿄·뉴욕·로스앤젤레스·런던·모스크바를 거쳐 파리에 착륙할 예정이다. 설치와 해체, 이사가 반복된다. 미술품을 실은 박물관이 관객을 찾아 세계 여행을 떠난다는 새로운 컨셉트다. 미술·패션계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 전시에 중앙일보가 국내 언론 처음으로 다녀왔다.
#35분짜리 우주 여행
한국작가 이불의 설치 ‘광년’. 실리콘구와 샤넬백 체인으로 만든 조형물이 전시장 벽과 바닥, 천장에 반사됐다<上>. 오노 요코의 ‘샤넬을 위한 소원나무’.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비치된 라이스 페이퍼에 소원을 적어 나무에 묶어놓는다<下>. [샤넬 제공] |
소요 시간은 35분 남짓. 관객들은 홍콩 스타페리 선착장의 주차장에 불시착한 ‘UFO’에서 저마다 꿈을 꾸고 나온다. 그래서 이 전시를 감상하는 것은 잠시 동안 ‘무중력’을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선정 작가들은 샤넬이 1955년 세상에 내놓은 퀼팅백(체인과 마름모꼴 누빔 패턴이 특징)을 모티브로 저마다 이야기를 만들었다. 스위스 작가 실비 플러리는 럭셔리 상품에 대한 소유욕에 관심을 보인다. 거대한 샤넬백 안에 담은 영상은 슈팅게임을 닮았다. 총을 든 여성이 끊임없이 샤넬백을 명중시켜 박살낸다.
이불은 ‘인간’ 샤넬에 주목했다. 희게 빛나는 실리콘 구와 샤넬백의 체인으로 만든 대형 설치 ‘광년’이다. 거대한 생물처럼 웅크리고 있는 ‘광년’은 자신의 모습을 벽·바닥·천장에 비추며 자기복제를 진행한다. 이불은 “디자이너 샤넬의 일상을 연구하면서 ‘강박’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 대해선 “자기 성향이 뚜렷한 작가들을 엮어 이야기를 어우러지게 한 큐레이터의 능력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미술인가, 공연인가
미술 전시지만 눈과 귀를 동시에 자극한다. 전시는 한 편의 공연, 혹은 영화다. 입구에서 받은 MP3 플레이어의 소리를 배경으로 작품 20점이 저마다 연기하는 새로운 형태를 즐기는 형식이다. 작품들이, 그리고 사운드워크가 일관되게 제시하는 메시지는 ‘삶은 형태의 역사’다. MP3에 담긴 효과음과 음악, 시적인 목소리가 해당 작품을 적절히 뒷받침한다.
예컨대 일본 작가 타바이모의 거대한 우물 모양 설치 앞에 서면 “우물 밑바닥에는 항상 비밀이 있습니다”라는 속삭임이 MP3 기기에서 나오고, 그 사운드는 우물 밑에서부터 떠올라오는 작품의 흑백 이미지와 예사롭지 않게 융합된다. 기존의 전시장 오디오 가이드에서 한층 진일보한 사운드워크(Soundwalk)다.
이 같은 사운드워크는 미술감상이란 행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하지만 맹점도 있다. 때론 사운드워크가 전시의 ‘조연’에 그치지 않고, 전시 자체를 지배하는 느낌을 준다. 일례로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비디오 설치는 MP3 플레이어와 별도로 감상하는 편이 낫다.
‘공연’의 주연은 단연 전시관 자체다. 백색의 빛나는 파이버글라스 500여 조각으로 이뤄진 건물은 가로 45m, 세로 29m, 면적 700㎡(약 200여 평) 규모다. 넓어졌다가 좁아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자연채광의 홀에 도달하는 등 다양한 공간이 연출된다. 미지를 여행하는 기분마저 든다. 이란 출신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현재 영국서 활동 중이다. 국내에선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설 디자인플라자를 설계했다.
‘모바일 아트’는 결과적으로 야경으로 이름난 홍콩에 볼거리 하나를 더 추가했다. 홍콩 전시는 4월 5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www.chanel-mobileart.com)에서 예약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