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용어사전
감정 이입(Empathy)
예술 작품 또는 자연 대상의 요소 속에 자신의 상상이나 정신을 투사 이입하여 자신과 대상과의 융합을 의식하는 심리 작용.
개념 미술(Conceptual Art)
작품보다는 작품의 의도나 과정을 하나의 예술로 생각하는 것으로 미니멀 아트이후에 나타난 현대미술의 한가지 경향이다. 작품의 실질적 형태나 완성도보다는 창작에 대한 생각이나 견해를 중요시 여김으로 해서 관념예술(Idea Art)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작품, 그 자체보다는 제작의 아이디어, 표현행위 등을 예술로 보는 반미술적인 예술이다.
개념미술은 그리거나 만드는 것보다는 언어에 의한 기술, 사진이나 도표를 이용한 방법, 낙서들을 이용하는데 이와 같은 컨셉출 아트의 기원은 마르셀 뒤샹으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30년 미술가의 역할이 물체나 대상을 꾸미거나 치장하는데 있지 않고 미의 대상을 살피거나 미의 본질을 밝히기 위한 미의 규명을 위한 선택에 있다고 정의 했다. 이것이 바로 개념예술의 근본적인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갤러리(Gallery)
본래는 교회당 안의 양쪽에 있는 2층 복도를 갤러리라고 하였으며 그 후에는 건물 바깥 쪽에 있는 차양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7세기부터 그곳에서 미술품이 진열되는 것이 관례가 되자 뜻이 바뀌어 화랑, 미술품 전시실 등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거리미술
거리미술(street art)은 야외 조각전시, 낙서, 작가들의 벽화, 거리 연극 등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용어다. 이들은 모두 공공적으로 개방된 공간에서 공개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도시의 게시판들은 그 공공적인 성격 때문에 작가들에 의해 전시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거리미술이란 용어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거리는 시민들에게 속하며 따라서 도시 문제들-마약, 쥐, 경찰의 무자비함등-에 대한 세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작가들은 공개 토론 장소로 거리를 이용할 수 있다.
고사산수(故事山水)
동양 회화의 화제. 자연을 배경으로 꾸민 신화나, 역사적인 인물에 얽힌 일화나 이야기를 산수화로 그린 것. 황제 신화에 의한 <백택도>, 동진의 우앙 후에이즈의 일화를 그린 <섬계방대도>, 현종 황제의 일화에 의한 <명황행촉도>, 바이 쥐이에 의한 <비파행도>, 쑤 스에 의한 <적벽도>등이 잘 알려져 있다. 주제를 취급하는 방식에 따라 고사산수가 되기도 하고, 고사인물이 되기도 한다.
고전주의(Classicism)
유럽의 예술 형식의 하나로, 낭만주의의 대립적 개념. 평형과 질서, 조화와 명석을 추구하며, 단정한 형식의 정돈, 엄격한 구성을 중요시하는 것이 특색이다. 고전주의는 주로 예술작품과 예술 이론에서 나타나지만 그 밖의 다른 문화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예술상에 나타나는 고전주의의 주요한 특징은 우선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 창작 목적은 진실을 포착하는데 있고 이것을 예술적 형상 속에서 표현하는 것, 자연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 사회의 도덕적 이상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 인식과 미적 형상과 도덕적 질의 동일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신에게 예종하는 중세적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독자성을 자각하여 인간 본성의 발전을 추구하고 그 근거를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작품과 예술론에서 찾으려 했던 16세기 르네상스기에 나타나, 휴머니즘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17세기에 들어와 고전주의는 특히 프랑스에서 발전하였는데, 사회적으로는 절대주의 군주제의 성립 과정 속에서 나타났다. 즉 일정한 제약을 지니고 있었지만 부르좌 사회의 출현에 선행했던 시기의 부르좌 계급의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전주의의 발전은 형식주의에 빠져, 19세기 초가 되면 쇠퇴하고 만다. 그 까닭은 부르좌 사회가 지니는 본질적인 모순이 빈부의 뚜렷한 대립을 비롯한 다양한 모순을 노정하여, 종래의 고전주의적 구상의 파탄을 초래하였기 때문이었다. 고전주의의 뒤를 이어서는 낭만주의 사조가 나타났다. 한편 미술사에서는 17,8세기에 바로크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고전주의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루이 왕조의 궁정 미술을 극복하려고 일어난, 신고전주의가 있다.
전자는 고대의 목가적 세계를 그려 격조있는 화풍을 세운 푸생으로 대표되며 후자는 냉정, 명쾌한 화풍으로 프랑스 혁명 전후의 시민 계급의 감정을 표현한 다비드와 그의 제자인 앵그르로 대표된다.
과정 미술(Process Art)
과정 미술이란 작품의 일반적인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그것을 위한 절차, 곧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 작품의 주제로 삼는 미술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현대미술에 필연적이고 중요한 움직임의 하나이다.
목적에 적합한 절차와 수단을 갖는 합목적적인 미의 판단을 뿌리로 한 현대미술에서 동기나 과정은 결과나 완성 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가 과정 미술의 탄생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과정 미술은 인상파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인상파의 분할 주의는 붓의 터치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놓으므로 해서 그것을 그리는 과정을 엿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과정 미술의 의식적 실현은 액션 페인팅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액션 페인팅은 전면에 부각된 행위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작품의 자체에 뿌리고 거칠게 칠하는 등의 작가의 행위를 느낄 수가 있다. 이러한 액션 페인팅은 결과로 나타나는 작품만큼이나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한 감상의 요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점차 이러한 과정 미술은 그 뒤 해프닝, 이벤트, 퍼포먼스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과정 미술은 표현이 대단히 자유롭고 직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를 위하여 오브제와 인간의 직접적 행위가 이용되기도 하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이 이용되기도 한다. 시간적인 서술 형식을 위한 소재와 재료의 선택이 중요한 구성 요소로 간주된다.
관념 묘사(Ideological Representation)
자연을 묘사할 때 육안에 보이는 대로 그것과 비슷하게 그리지 않고 화가의 기억에 의해 그리거나 추상적으로 그리는 방법을 말한다. 사실적 묘사나 사생과는 반대의 뜻을 지닌다. 미개인이나 어린이들의 묘사에서 볼 수 있는 경향이다. 흔히 나무는 갈색이고 하늘은 푸르다라는 식의 생각을 그대로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들이다.
구아슈(Gouache)
아라비아고무에 안료를 섞어 만든 불투명 그림물감이나 그것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 고대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 맨 처음 사용되었으며, 18세기에 널리 애용되었다. 건조가 빠르고 덧칠이 용이하며 불투명 그림물감과 비슷하다.
그라데이션(Gradation)
규칙적인 변화나 점진적인 추이를 말한다. 점차 색이나 명도가 뚜렷한 경계를 지니지 않고 변화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무지개의 배열이나 색상환 등에서 불수 있는 변화이다.
극사실주의(Hyperrealism)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나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 같은 시기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시도된 비슷한 경향이 미술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슈퍼리얼리즘, 포토리얼리즘, 래디컬 리얼리즘, 샤프 포커스 리얼리즘, 스튜디오 리얼리즘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며, 주로 일상적인 것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주관을 적극 배격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 없는 장소, 친구, 가족 등이 대상으로 취급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캔버스에 감광제를 발라 사진을 직접 프린트한 작품도 있다. 사진기의 눈이 포착한 영상은 사실인 것이 확실하지만 그것도 결국 실물로부터 떨어져서 자립한 일종의 허구일 따름이다. 물론 이러한 허구에 의해 포위된 일상이 존재하며 이러한 허구는 새로운 현실일 수 있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팝 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다만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 다룰 뿐이다. 그러나 감정을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확대한 화면의 효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었던 추악함--모발에 가려진 점이라든가 미세한 흉터까지도 그대로 클로즈업되어, 보통이라면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사실성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혹한 인상을 받게 만든다.
극사실주의는 미국적 즉물주의의 발상, 또는 미니멀 아트의 몰개성주의와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종래의 추상미술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이라는 의미와 사진 그 자체와 양쪽에 대한 아이러니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작가들은 팝 아트의 작가들보다 대체로 한 세대쯤 젊은데 작품제작에 사진이나 슬라이드를 직접 간접으로 이용하는 척 클로즈, 하워드 캐노비츠, 맬컴몰리 등과 사진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자연의 풍경이나 모델만을 대상으로 하는 필립 펄스타인, 시드니 틸림 등의 두 계열로 나뉘어진다. 극사실주의가 조각에 적용될 때는 삼차원이라고 하는 조각의 기본 요건에 따라 한층 실물에 가까워진다. 듀안 핸슨과 존 드 안드레아의 작품은 한치의 헛갈림도 없는 충격적인 실물을 제시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나이프(Knife)
유화에서 쓰이는 회화 용구로서 팔레트 나이프와 페인팅 나이프가 있다. 팔레트 나이프는 유화물감을 혼합하거나 팔레트에 남아서 굳은 물감을 긁어 낼 때 쓰이면 강철로 길죽하며 끝 부분은 둥글게 되어 있다. 그리고 페인팅 나이프는 유화물감을 떠올려 바르는데 사용되며 인두와 같은 모양으로 탄력성이 뛰어나다. 그리고 이에 의에 그려진 그림은 거친 질감이 풍부하게 나타나고 화면 자체에서 색 혼합을 하기 위해 많이 애용된다.
낙선전(Salon Des Refuses)
1863년 프랑스의 심사에서 낙선된 그림들을 모아 전시한 전시회를 말하며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도 여기에서 발표되었다. 단 1회로 끝나고 말았지만 인상주의 탄생의 계기가 되었고 오늘날의 앙뎅팡당전의 효시가 되기도 하였다.
낭만주의(Romanticism)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전 유럽에 탄생한 예술적 경향. 개성을 구가하고 자아의 해방을 주장하며 상상과 무한적인 것을 동경하는 주관적, 감정적인 태도가 두드러진 특색이다. 미술상으로는 고전주의, 바로크에 대해서도 이 경향은 언급되지만, 일정하고도 명확한 양식을 낳은 것은 아니다. 조각분야에서는 프랑스와 뤼드, 건축에서는 이른바 신고딕 양식과 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회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의 차가운 형식 존중에 대한 반동이라는 형태로 제리코를 거쳐 들라크루아에 이르는 동안 분방한 색채, 유동적인 필치, 동감에 찬 구성을 갖춘 영웅적 작품을 남기고 있다.
특히 들라크루아의 동방 취향 또는 이국 취미에 의한 후기 작업은 낭만주의의 이와 같은 특색은 회화사상 독일 중세 혹은 초기 르네상스의 종교적 정열과 결합된 작품, 나잘레 파, 룬게, 프리드리히의 범신론적 풍경화 속에서도 뛰어난 선구적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네오 다다이즘(Neo-dadaism)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추진된 전위 예술운동.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다다의 운동을 정신적으로 이어받고 기성의 가치체제를 부정하며, 일상적인 오브제나 그 파편을 주위에서 떼 내어 화면에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낳고자 했다. 즉, 그전의 다다 운동이 주로 기성 가치의 부정을 목적으로 파괴와 반항으로 시종한 데 대해, 이 운동은 반예술적 활동을 그대로 창조 행위로 전화하고, 여기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는데 특색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기하학적 추상과 추상표현주의 대립 뒤에, 전혀 새로운 입장으로 등장한 것으로, 유럽의 누보 레알리슴의 운동에 호응해 일어났다. 대표적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 재스퍼 존스, 리처드 스텐에비치, 존 체임벌린 등을 들 수 있다. 단 라우센버그르 네오 다다의 부류에 넣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뉘앙스(Nuance)
일반적인 음, 의미, 감정, 언어 등의 미묘하고도 섬세한 차이를 말하며 미술에서는 색조, 명암, 형태, 정취 등에 관한 표현상의 미세한 차이를 말한다.
뉴 페인팅(New Painting)
1980년대에 들어와서 대두되기 시작한 새로운 조류의 회화. 거대한 캔버스에 거친 필치, 원색을 사용한 격렬한 색의 대비에 의해 그려지는 폭력, 죽음, 성(性), 꿈, 신화 등의 도상을 갖는 이미지의 무리들은 그때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던 회묘적인 회화, 그러면서도 세속성과 무관하지는 않았던 회화의 봇물을 터뜨린 것처럼, 한때 세계에 만연했던 느낌이 있었다.
금욕적이며 관념적인 미술의 계승을 특징으로 하는 70년대 미술과 지나치게 대조되었던 까닭에 한편에서는 새시대의 도래라고 흥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회화 발전의 역사로부터 이탈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경향도 있었다.
실상 공식적으로 각국에서 발생했던 이 현상은 신천지를 열어가는 운동으로서 이론적이고 구축적인 공격의 방향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종류의 위기감에 뿌리를 두었다. 그러한 감각적인 세계관의 표명은 금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오늘날에 있어서 표현주의 계보의 재평가를 촉진시켰다.
근자에 이르러 신표현주의라는 명칭이 정착되고 잇는 이 새로운 회화의 물결은 '어 뉴 스피릿트 인 페인팅(81년 런던)', '바로크81(81년 파리), '슈나벨 전(81년 뉴욕)' '아방가르디아, 트랜스아방가르디아 68~77(82년 로마)', '차이트가이스트(82년 베를린)', '미니멀리즘에서부터 표현주의에로(83년 뉴욕)' 등의 전람회에 의해 주목을 받았다. 관련 작가는 미국의 슈나벨, 사레, 보로프스키, 독일의 페팅, 미텐돌프, 폴케, 이탈리아의 키아, 쿠치, 클레멘테, 파라디노 등을 들 수 있다.
각 나라의 개별성을 있다고 하더라도 공통되는 것도 있다. 그것은 텔리비젼, 영화, 사진, 잡지 등 팽창 일로에 있는 시각적 음성적인 정보의 도가니 속에 존재해 있는 일상성을 통해서 명확한 실체를 좀처럼 찾기가 어려워진 현대인의 실존주의적인 세계관에 대한 회의이다.
다다이즘(Dadaism)
1915~22년경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문명, 반합리적인 예술운동. 제1차 세계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 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 이 운동의 근본정신이었다.
다다라는 명칭은 1916년 취리히에 후고 발이 운영하는 볼테르 카바레(카페)에서 장 아르프, 리하르트 휠젠베크, 트리스탄 차라, 마르셀 장코, 에미 헤닝스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와 반전주의자(反戰主義者)들이 모임을 가지곤 했는데 한번은 프랑스어-독일어 사전에 끼워져 있던 종이 자르는 칼이 우연히 '다다'라는 단어를 가리키고 있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 단어가 정통주의 미학에 반기를 든 자신들의 예술활동과 반전운동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채택했다고 한다. 그 파괴적인 주장은 기관지인 <다다> 제3호에 실린 '다다 선언'에서 잘 엿볼 수 있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중 또는 전후에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어 갔다.
전쟁의 참화와 파괴에 의한 가치관의 전도, 전통적인 유럽적 가치에 대한 일체의 불신이 그 배후의 정신 상황이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독일에서는 반전운동과 코뮤니즘에 결합된 베를린 다다가 1919년에 결성되었다. 또 1919년 쾰른에서는 아르프, 에른스트, 요하네스 바르겔트에 의해 전람회가 개최되었으나, 관에 의해 폐쇄당했다. 하노버에서는 1919년에 쿠르트 슈비터스가 메르츠빌트를 창안해냈다. 피카비아는 또 바르셀로나에서 잡지 <391>을 창안하여 취리히 다다와 이어지고 있다. 파리에서는 같은 해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등에 의한 시 잡지인 <리테라튀르>가 창간되어 취리히 그룹의 거의 전원이 여기에 참가했다. 그리하여 1920년대 초기에는 다다운동이 거의 전 유럽과 미국에까지 미쳐 1922년 파리에서 대규모의 국제전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24년 초현실주의가 발족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유럽의 다다 운동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으나, 1912년경부터 이미 다다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던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이 만 레이와 함께 뉴욕 다다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경향으로서는 소위 레디메이드의 오브제 또는 움직이는 오브제, 콜라주 또는 앗상블라주로 통하는 메르츠 빌트 등이 시도되었던 점이다. 기계적, 성적인 이미지의 사용도 특색이다. 이들 수법은 다다의 강렬한 가치 부정적 관념과 함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60년대의 예술 등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대지예술(Earth Art)
랜드 아트 Land Art, 경우에 따라서는 프로세스 아트 Process Art 등으로도 불린다. 1960년대 후반 영국, 독일, 특히 미국에서 성행했던 미술 경향. 이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 스미드슨이 소설가 브라이언 앨디스의 동명의 과학소설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전람회의 이름으로 붙임으로써 일반화된 용어이다.
대지미술은 미니멀 아트의 영향에서 '물질'로서의 예술을 부정하려는 경향과 반문명적인 문화 현상이 뒤섞여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상업주의적인 호랑, 미술관, 컬렉터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영구불변의 아름다움을 목표로 삼는 종래의 미술 개념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소재나 방법, 경향도 작가마다 기상천외하다. 예를 들면, 사막, 산악, 해변, 설원 등의 넓은 땅을 파거나 거기에 선을 새겨 넣은 후 사진에 수록하여 작품으로 하기도 하고 흙 또는 잔디 따위의 자연물을 그릇에 담거나 직접 화랑에 전시하기도 한다. 또 밀밭의 밀을 X자형으로 베어내기도 하고 곡식을 그대로 화랑에 전시하기도 하는가 하면 아스팔트길을 분쇄하기도 하며 해변가 절벽을 밧줄로 묶기도 한다.
이러한 것은 모두 예술의 일시적 성격, 'material'로서의 자연의 재인식, 자연환경의 창조적 응용 등을 강조한 것이다. 대표 작가에는 로버트 스미드슨, 마이클 하이저, 데니스 오펜하임, 피터 허친슨, 알렉산드 스타기 등이 있다.
데칼코마니(decalcomanie)
전사법이라고 번역된다. 원래는 도기나 유리, 기구 등의 그림붙이기에 쓰인 수법으로, 명반이나 알루미나를 접착제에 섞어 종이 위에 칠한 것을 원화지로 하고, 그 원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종이째 도기나 유리에 눌러 붙여 그림만 상대쪽에 전사하는 방법을 뜻하였다. 그러나 근대 미술에서는 그와 같이 공예에만 국한하지 않고, 콜라주나 프로타주와 함께 회화제작 자체의 한가지 수단으로서 널리 사용한다. 많이 쓰이는 방법은 종이에 물감을 발라서 두 겹으로 접는 것인데 작가도 예측 못하는 대칭적인 우연한 영상을 얻게 된다.
데칼코마니를 최초로 이용한 작품은, 1935년에 초현실주의의 화가 오스카 도밍게스가 제작한 과슈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뒤 제 2차 세계대전 직전에 막스 에른스트가 이용한 후, 초현실주의의 중요한 표현 수단의 하나가 되었다. 도밍게스의 데칼코마니는 무엇인가 대상의 표현을 재향하는 것이 아니라 과슈의 흐름으로부터 생기는 부정형의 영상을 그대로 제시하고 있을 뿐이지만, 에른스트에게서는 그것이 특유한 환상 세계의 출발점으로 이용되고 있다. 에른스트의 <비오는 오후의 유럽-1940년작>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다만 완성된 그림을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사의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한 얼룩이나 어긋남의 효과를 이용하고 있는 점에서, 예전의 그림 붙이기에 사용되었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최근에는 로샤 테스트 등 심리학의 자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데포르마시용(Deformation)
변형이나 외형 등의 의미로 규칙적이고 기하학적인 조화에 이탈하는 것. 자연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본질을 명확히 하기 위해 고의로 왜곡시키거나 무시하여 그리는 방법. 고전기의 8등신 그리스 조각들이나 현대의 사진 기법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드로잉(Drawing)
선을 긋거나 그림을 제작하는 것으로 데생이나 소묘를 말한다.
드리핑(Dripping)
액션 페인팅의 기법으로 붓이나 도구로 그림물감을 캔버스 위에 흘리거나 붓거나 튀겨서 제작하는 회화 기법이다. 잭슨 폴록이 많이 사용하였으며 그린다는 의미보다 어떤 행위 자체에 중점을 두고 하는 우연적 효과로 오토마티즘(자동기술법)의 방식으로 그리기 위한 방법이다.
물질회화(Materialbild)
모래, 자갈, 직물, 스폰지, 나무 등의 오브제 트루베를 사용하여 구성되며 과거의 타블로 회화의 틀을 뛰어넘는 회화를 일컫는 용어. 따라서 네오 다다의 양상과 관련을 가지며 특히 컴바인 페인팅과 깊은 관계를 갖는 용어이다.
뮤지엄 굿(Museum goods)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제작, 판매하는 생활소품으로서의 기념물을 의미한다. 박물관의 정책이나 수장품과 관련된 액세서리 등의 기념품. 오늘날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단순히 작품을 보존 전시하는 기능뿐 아니라 교육이나 연구, 사회봉사, 문화정보의 전달자 역할을 점차 늘려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 가운데서도 일상생활 영역에서 일반 관람객들과의 교류를 증가시키고 있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뮤지엄 굿도 엄밀하게 말한다면 바로 이러한 교류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우수한 작품 감상의 즐거움을 생활 속에까지 연결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오리지널 작품이 갖는 고품위의 미적 감성을 상품 속에 연결시켜, 컬렉션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컬렉션인 고대와 중세 귀족의 일용품, 혹은 서민의 생활잡기 등 아름다운 물품들의 레프리카, 그리고 이미지 패턴을 배합하여 현대적 생활용품으로 재생산, 판매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카탈로그 안내서 학술 서화집 등의 도서, 카드 다이어리 엽서 포스터 복제화 등의 종이제품에서부터 연필 지우개 필통 가방 등의 문방구류, 넥타이 스카프 티셔츠, 어린이를 위한 물품, 꽃병 전화기 램프 식기 등 생활용품, 액세서리 화장품 등의 여성용품, 심지어는 못쓰게 된 폐자재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용도는 다양하다. 모두 해당 미술관 또는 박물관이 판매, 저작권을 가진 것이다. 세계 유수의 현대미술관에서는 특정 아티스트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기념물에 담아 높은 미감을 널리 알리는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도 이러한 기념물의 제작과 판매가 소수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 양적 질적으로 초보단계여서 보다 적극적인 인식이 요구된다.
뮤직 쿼테이션(Music Quotation)
인용(引用)음악. 말 그대로 작품에 기성의 음악을 끌어들인 것을 말한다. 중세 이래 서양음악사에서는 기독교 성가를 골조로 하여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하나의 상식이었다.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그러한 인용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표현을 창조해내는 일이 주류로 인정받게 된다. 오늘날에는 다시 기성의 음악을 사용한 작곡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종의 포스트모던적인 음악의 전개방식으로, 과거의 음악 수법을 카탈로그에서 선택하듯 자유롭게 사용하는 절충주의적인 작곡방식이라 할 수 있다. 베르그, 아이브스 등이 이 방면의 선구자이며 오늘날 짐머만, 베리오, 쇼스타코비치 등이 이 방식을 구가하는 작곡가로 유명하다. 뮤직 쿼테이션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과거의 사회적 맥락을 담고 있는 음악 개념을 이용하여, 새로운 문맥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져오는 데 있다. 음악이 고립된 문화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를 짊어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시사해 주는 시각에서는 지극히 효과적인 수단이다.
미니멀 아트(Minimal Art)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미술에 현저하게 나타났던 경향으로 최소한의 조형수단을 사용하여 제작된 회화, 조각 등을 가리킨다. 형태 또는 그 제작과정이 지극히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평론가인 바바라 로즈는 그의 논문 (<아트 인 어메리카> 1965.10) 에서 그 단순함을 두고 'ABC 아트'라 정의했고, 마이클 프리드는 '리터럴리스트 아트(Literalist art: 있는 그대로의 예술, 즉자주의 예술, 혹은 직역주의 예술)'라는 말로 군더더기 없는 단순성을 그 특징으로 요약했다(<아트포럼> 1967.6). 그러나 미니멀 아트라는 명칭은 원래 영국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리차드 월하임이 뒤샹, 말레비치, 라우젠버그 등에 대해 논했던 <미니멀 아트>(1965.1)에서 시작되어 보편화된 것이다. 연역적이며 결정론적인 방법으로, 똑같은 단위체의 반복으로 제시되는 미니멀 아트는 구조와 형태에 있어 '환원성'을 특징으로 한다. 추상표현주의의 특징인 '내적 관계가 없는 단일한 전체성(올오버)의 공간'을 지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의 자율성 및 순수성 그리고 예술의 절대적 혁신으로서의 '비(非)예술-물체, 현실'이라는 20세기 특유의 예술개념과 관계하고 있다.추상표현주의는 원근법을 거부하고 근접응시를 통해, 세부 간의 계층적 관계가 있는 구성을 통해 보다 유기적인 전체성을 지향했던 분석적 큐비즘 회화의 의인적 공간을 부정적으로 계승했다. 미니멀 아트는 추상표현의 회화의 이러한 관계성을 배제하고, 근접응시를 원격적인 시각의 전체성과 결합시키고 있다. 그리고 비(非)예술인 재료(캔버스, 안료, 소재)의 물질 본연의 상태를 예술 자체와 접목시켰다. 프랭크 스텔라의 <검은 회화>와 이에 이어지는 세이프트 캔버스회화는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미니멀 아트'라는 개념으로 현대미술을 분석했던 월하임의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비(非)예술의 대표인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다시 예술의 개념에 연결되어 있는 기묘함을 서술한 바 있다. 미니멀 아트도 모더니즘에 있어서의 예술의 순수화와 자율화가 지니는 자기비판성에 다시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니멀 아트는 뒤샹과 이브 클랭처럼 사물로서의 작품과 예술개념을 분리하여 다시 결합한 것이 아니다. 추상표현주의의 공간이 단일한 전체로 전개된 끝에 오히려 공간으로서의 충실한 내용을 잃어버리려 했을 때, 물체와 3차원에 연결하여 작품의 통합성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 미니멀 아트였다. 현실 공간 속에서 전개된 3차원의 조각작품이 미니멀 아트의 주류를 이룬다. 1969년 <현실의 예술, 미국 1948-68>展을 통해 이러한 평가를 확인시켜 주었으며, 미국의 평론가 루시 리 파드는 이러한 조각의 경향을 '프라이머리 스트럭처(Primary Structure: 기본구조)'라 명명했다.프랭크 스텔라, 도널드 저드, 로버트 모리스, 솔 르윗, 칼 안드레, 존 맥클라켄, 댄 플래빈 등의 작업이 미니멀 아트의 대표로 손꼽힌다. 이들은 反일루저니즘, 익명성, 환원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므로 작품을 보는 "지각 경험이 수단이 되지 않고 그 자체가 목적"(E. C 구센)이 된다. 따라서 완결된 자기동일적(반복적) 표현을 지닌다는 차원에서 예술작품의 근거는 무화(無化)되고 만다. '만들어진' 사물의 가치로부터 '보여지는' 교환가치(마이클 프리드의 '극장성'의 개념)로의 변이는 작품의 비물질화, 기능성, 교환적 순환성과 연결되고 개념미술과 시뮬레이션니즘에 계승 전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른바 '포스트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것은 1971년 평론가 로드 핀커스위튼이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그는 리처드 세라의 납으로 주조된 작품과 에바 헤세의 이리저리 위허 벽에 걸린 작품에서 보이는 장식적이고 회화적인 접근을 저드와 모르시의 1969년 이전의 대표적인 미니멀 작품과 구별하여 정의했다. 1980년대 말에는 신표현주의의 지나친 주정주의를 탈피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기계작업을 떠올리는 매끄러운 표면을 지닌 작업들이 다시 등장했다.
믹스트 미디어(Mixed Media)
일반적으로 하나의 예술작품을 실현하는데 여러 종류의 기법과 소재를 혼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멀티미디어' 혹은 '인터미디어'라고도 한다. 그러나 1960년대 딕 히긴즈의 정의에 의하면, 인터미디어의 경우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다른 미디어가 개념적으로 융합된 것(예를 들면 퍼포먼스, 具體詩, 視覺詩 등)을 의미한다. 그는 하나의 예술작품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나눌 수 없다는 점에서 각종 미디어 사이의 교류인 믹스트 미디어(예를 들어 오페라)와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고유개념으로서의 인터미디어는 늘 관습화, 장르화로의 퇴행과정과 손을 맞잡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미술에 있어서 믹스트 미디어는 통상의 그림재료와 조각 소재가 아닌, 뒤샹과 다다이스트가 말하는 '일상성에서 발견된 오브제/소재'의 조합으로 구성된 작품 내지는 그 소재표기를 가리킨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는 전통적인 재료를 탈피하는 작가들이 많아졌는데 그들은 여러 재질을 빌어 복잡하게 짜 만들어 내는 일이 많다. 그것을 모두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범주도 무척 모호하고 애매하다. 믹스트 미디어는 한 단어로 작품의 재료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무척 간편한 표기로 자주 사용된다. 이 용어는 1960년대에는 복합적 환경예술, 이벤트, 해프닝, 퍼포먼스 등의 총칭으로 사용되었다. 그 속에는 무용, 판토마임, 영화, 음악 등 제각기 서로 다른 예술형식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형식들이 혼재해 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미술저널리즘을 중심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 때는 시각 커뮤니케이션(영화, 텔레비젼, 컴퓨터 등)에서 한 매체만을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몇 개의 매체를 동시에 사용하여 서로 결합시키는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바우하우스(Bauhaus)
1919년 건축가 그로피우스가 바이마르에 창립한 종합 조형학교 및 연구소. 건축을 주축으로 하여, 기능적이고 합목적적인 새로운 미(美)를 추구한 일종의 예술과 기술의 종합을 꾀하는 데 그 이념과 목적이 있었다. 교수진이 공작 교사와 형태 교사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도 커다란 특색이다. 형태 교사에는 그로피우스 외에, 칸딘스키, 클레, 파이닝거, 실레머, 모홀리 나기 등이 있어, 각각 벽화, 유리화, 인쇄, 목석조, 금속 등을 담당하였다. 1925년에는 데사우로 옮겼고 1932년에 폐쇄되었는데, 그동안 '바우하우스 총서'를 간행하고, 갖가지 새로운 조형을 시도 한 것 외에, 유용한 인재도 많이 배출하였다.
바우하우스는 근대 기술의 대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론적 교육과 실제적 교육을 행하여, 예술과 기계 기술, 인간과 기술, 예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예술과 생활 형식의 통일을 꾀하고자 했다. 종래 예술의 개인주의적, 살롱적 경향을 부정했던 바우하우스는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방식을 적극적으로 고취함으로써, '예술=디자인'을 '대량생산을 위한 원형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 기반이 되는 현대 사회의 근본적 성격을 분석하고 인식하여, 그것을 형태의 창조력과 결합시킬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러한 교육 이념은 창조력의 행방, 자연의 재질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익히는 예비 교육과, 또 전문 코스에서의 형태 교육과 공방실습 등에서 구체화되었고, 그 교육의 귀납적 방법론은 현대 디자인 교육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로피우스가 제기한 '산업과 예술의 결합'은 하네스 마이어의 시대가 되면 한층 더 기능주의적 방향으로 또 사회주의적 방향으로 전개되어 '디자인의 사회성'이 강조된다. 그는 형식주의에 빠져버린 바우하우스의 조형감각을 경고하면서, 바우하우스는 예술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며, 따라서 디자이너의 창조적 활동은 사회에 의해 설정되어 민중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몇 십만 민중의 주택, 학교, 공원, 가구가 부족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라고 반문하며 공동체가 내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취급함으로써, 공동체와 새로운 창조자로서 개인생활 사이에서 조화 있는 형태를 부여한 탐색자로서의 디자이너의 상을 구했다. 공동사회에 대해 객관적 지식을 갖고, 그 생성에 걸려 있는 문제를 취급할 때 디자이너는 비로소 자신의 작업의 의미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이나 국가적인 차원을 초월하여, 인간 그 자체를 근저에 두는 인터내셔날한 디자인 사상은, 나치의 국가지상주의 이념과는 상치되는 것이어서 바우하우스는 탄압을 받아 결국은 폐쇄되고 만다. 그러나 디자인의 이런 사상은 보다 복잡한 모습을 지니면서 각국의 근대 조형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시카고에서 다시 뉴 바우하우스가 설립되었다가, 훗날 시카고 디자인 연구소가 되었다. 또 막스 빌은 울름에 뉴 저먼 바우하우스롤 알려진 조형대학을 연 일도 있다.
반예술(Anti-Art)
이 개념은 원래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제기된 것으로 현재까지 폭넓고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예술이라는 개념의 뿌리는 예술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기성가치 부정을 표명했던 취리히 다다에서부터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지만('다다'라는 말 자체도 아무런 의미 없이 선택된 말이다. 그 뜻은 루마니아어로는 '예, 예', 프랑스어로는 어린아이가 타는 목마를 의미한다. 그리고 독일인에게는 소박함과 유모차에 결부되는 출산의 즐거움을 의미하며, 투르족에게는 성스러운 소의 꼬리를 의미하는 등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도록 붙여진 이름이다.) 그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출발은 역시 뒤샹에게 있다. 반예술의 이름 아래 뒤샹은 1916년 앙데팡당전(심사와 수상절차가 없는 전시회로 뒤샹 자신도 위원으로 있었다)에 R. Mutt라고 사인한 변기를 <샘>이라 제목 붙여 출품했지만 전시를 거부당했다. 예술과는 전혀 무관한 영역의 변기가 기성가치를 부정하는 한 상징으로 등장해 그것이 뜻밖에도 예술의 전개 및 그 개념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된 아이러니처럼, '반예술'은 무엇보다도 '예술'자체와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기묘한 개념이다. 뿐더러 뒤샹은 1920년 <모나리자>의 복제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넣은 <L.H.O.O.Q.>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작품의 제목을 계속 연결해 읽으며 '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욕정을 나타내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 역시 반예술의 전형적인 출발이다. 그는 기성예술의 대표격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모나리자>라는 예술의 최고봉을 대상으로 하여 도전행위를 전개시키며 그것을 다시금 예술적 문맥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것이다. 반예술은 그것이 부정하는 대상인 예술에 앞서 존재할 수는 없다. 뿐더러 모든 예술을 부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아니다. 어떤 예술이 궁극적인 지점에 도달했다고 인식될 때, 이 예술과 그것에 함께 하는 예술의 흐름이 부정될 따름이다. 다다는 특히 큐비즘을 직접 부정하여 근대로부터 근세로 거슬러 올라가는 예술의 흐름을 부정했었다. 이렇게 앞선 미술사조에 반하는 흐름이란 그 역사적 맥락에서 이미 황금시절을 보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예술은 애당초 스스로의 내부에 자기비판적 요소를 숨기고 있었다. 이 예술이 그 자체 극복의 대상이 될 요소를 지니며 발전을 위한 부정을 거듭하는 것을 내재적 자기비판이라고 한다면, 다다에서 출발한 반예술은 그것을 확장하여 예술자체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외재적인 자기비판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예술의 이러한 확장에도 불구하고 내재적 자기비판의 예술은 그 맥을 이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그 '반(反)'의 대상을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에 두고 맥을 이어왔다. 누보레알리즘, 팝아트, 미니멀아트, 개념미술이 바로 그것이지만 이 경향들은 다다와는 달리 점차 외재적인 비판을 중지하고 반예술적 성분을 예술 구성의 모든 요소를 검토하는 내재성 속에서 찾았던 것이다.
반형태(Anti-Form)
아르테 포베라에 있어서 그 특징을 나타내는 개념. 원래는 1968년 4월 뉴욕의 아트포럼에 <반형태(Anti-Form)>를 발표했던 로버트 모리스에 의해 도입되었다. 아르테 포베라의 한 경향에서 유추된 무형식으로의 방향을 의미한다. 보통 자연 소재의 적용뿐 아니라 프로세스의 변화를 포괄적으로 포함한다.
발르르(Valeur)
주로 ‘色價’라 번역되는 프랑스어. 화면 각 부분 색채의 색상, 명도, 채도의 상관관계를 말하며 두 개 이상의 색채대비에 의하여 화면에 나타나는 공간표현을 말하기도 한다. 본래 의미는 어떤 색조 속에서의 명도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판화작품 등에서 발르르는 흑에서부터 백으로, 명암의 고저로 변이하는 것이지만, 회화작품의 경우 어떤 일정한 색조의 내부에서, 예컨대 밝은 청에서부터 어두운 청으로라는 식으로 변이한다. 또 확대 적용하여 화면내부의 색조 간의 관계, 채도의 관계 등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색가의 뜻은 회화양식의 추이에 따라 다소의 변화과정을 거쳐왔다. 옛날에는 명암의 고저에 의존하여 회화가 제작되었지만, 인상파 이후 근대회화에서는 색채구사를 통해 고전적인 명암법과 원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색상, 명도, 채도의 상호대비관계로 입체감, 공간의 넓이, 움직임 등을 표현하게 되었다. 따라서 색가의 개념도 그 만큼 폭이 넓어졌다.
발주예술(Order Made Art)
發注藝術. 브론즈 조각에서처럼 발주는 특별히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프라이머리 스트럭처전 이후 전개된 입체작품(합성수지와 강화유리 등의 신소재를 사용한 단순한 형체에 빛과 움직임 등을 가미한 작품)을 조각가가 도면과 모형을 만들어 공장에 발주하는 제작형식을 당시 발주예술이라 지칭하게 되었다. 가능한한 주관성을 배제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과정은 한편으로는 작가의 창작 발상과 제작의 과정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했다.
발파라이소 비엔날레(Valparaiso biennale)
1973년 칠레에서 창설된 비엔날레. 발파라이소시 주최로 시립갤러리에서 열린다. 매회 하나의 테마를 정하여 그에 따라 출품 작품의 장르에도 다소 변화가 따르게 된다. 한국은 '회화'를 주제로 했던 1983년 제 6회전부터 참가했는데 당시에는 41개국에서 3백 30여 점이 출품되었다. 발파라이소 비엔날레는 커미셔너가 출품작가를 선정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개인 참가도 가능하다. 대상(발파라이소市賞) 한 명, 비엔날레賞 및 가작 약간 명의 수상제도를 두고 있다.
방글라데시 비엔날레(Bagladesh Biennale)
정식 명칭은 <방글라데시 아시아 미술전>. 방글라데시 실파카라 아카데미 주최로 1981년 시작되었다. 아시아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유일한 비엔날레이기도 하다. 한국도 제1회 전시부터 계속 출품하고 있다.
‘배드' 페인팅('Bad' Painting)
풍자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이 명칭은(그래서 역설적으로 따옴표가 붙어 있다) 1978년 마르시아 터커의 기획으로 뉴욕 뉴뮤지엄에서 열렸던 전시회의 타이틀에서 등장한 것이다. 이 용어는 일정한 프로그램처럼 짜여진 하나의 운동이나 양식이 아니라 70년대의 개념미술과 미니멀 아트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대항했던 일련의 경향을 가리킨다. 표현적이고 또 의도적으로 거칠고 아무렇게나 다룬 듯한 필치와 색감, 서술적인 주제의 암시가 특징이다. '배드'페인팅의 주제는 구상이 압도적인데 조안 브라운의 휴가철의 낭만을 다룬 작품에서부터, 찰스 가라비디언이 넓은 붓터치로 묘사한 고전주의 건축과 단편화된 인물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저급문화'와 관련을 맺으면서 '고급취향'의 기준을 거부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슈나벨, 살르, 로버트 롱고 등은 이 경향에 속하면서도 서로 다른 작품 방향을 지녔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이들이 즐겨 다루었던 자전적이며 특이한 이미지들은 당시의 평론가 대부분이 '좋은' 미술로 평가했던 미니멀리즘이나 개념미술이 보여준 감정제어와 선명하게 대조된다.
버테니컬 아트(Botanical Art)
본래 식물을 세밀하게 예술적으로 그린 회화를 말한다. 식물을 이미지 대상으로 하는 아트를 폭넓게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식물 그 자체라고 하기보다는 초목의 생명현상에 역점을 둔다. 독립된 한 장르로 특별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의 상징인 식물이 빛을 향해 수직으로 혹은 나선상으로 커가는 성장성과 그 신비적인 존재 방식에서 시사된 작품을 말한다. 메카닉한 정보계로 거듭 덮이고 있는 오늘날의 시각적 상황에서 가장 위태로운 존재가 바로 식물의 인스피레이션이라고 할 때, 식물이미지 미술의 전망은 새삼스럽다.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1895년 이탈리아의 베니스시가 창설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미술전이다. 개설 당시 이태리의 미술은 고전 유산에 대한 뿌리깊은 집착으로 마비되어 있었다. 이 비엔날레는 이태리 미술이 국제적으로 새롭게 호흡할 수 있는 길을 열였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본섬의 남쪽 끝 자르다니 공원을 주된 전시장으로 하여 2년에 한번, 6월에서부터 9월 무렵까지 여름철에 열리는 전시회이다. 전시장 안에는 30여 개 국의 파빌리온(각 나라가 관리하는 전시관)이 설치되어 있지만, 중앙관(이태리관)과 가설 전시관 등을 두고 있는 까닭에 독립된 파빌리온을 가지고 있지 못한 나라도 전시를 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제 46회 전시에 독립된 파빌리온을 개관하여 참가한다. 원래 수상제도를 두어 많은 관심을 모았으나, 1968년 수상제도가 상업주의와 직결되어 있다는 세찬 비난을 학생들과 미술가들로부터 받았다. 1970년 제 35회부터 수상제도 자체를 폐지시켜 버렸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다시금 개선된 수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국가상의 수상(1986 - ) 등이 바로 그것이다. 1993년에 열렸던 제 45회 비엔날레의 주제는 '예술의 기본방위'로서 일종의 초국가주의, 혹은 신국제주의로서의 테마성을 강하게 드러냈다. 개인과 개인, 국가와 개인 그리고 국가 간의 벽을 허무는 보다 자유로운 의식의 소통을 목적으로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커미셔너제도를 취하고 있으며, 원칙적으로 각 나라의 커미셔너가 작가선정 및 전시 등을 책임지게 되어 있다. 전시기간 중에 중앙관과 별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이외에 비엔날레 당국이 주최하는 젊은 작가의 초대전 <아페르토>도 개최되어 신인작가의 중요한 국제무대 등용문이 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1970년대 전반까지 세계미술의 동향을 한눈에 읽어 불 수 있는 중요한 위치를 지켜 왔지만 근자에 올수록 다소 정체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랜 전통과 권위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베일 페인팅(Veil Painting)
투명하며 엷은 물감이 베일처럼 겹친 채 캔버스 가득 넓혀 가는 회화를 의미한다. 미국 화가 모리스 루이스가 1950년대 후반에 많이 사용했던 스테이닝(스며들기)에 의한 회화를 말한다. 그는 밑칠을 하지 않은 천 자체의 캔버스에 엷은 아크릴릭 계통의 물감을 흘려 작품을 제작했다. 붓으로 안료를 바르는 것이 아니라, 안료를 직접 캔버스에 물들이는 것이다. 병치되기도 하고 또 중층적으로 포개지기도 한 색채는 어느새 캔버스와 일체화되어 촉각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반투명의 거대한 커텐 형태의 색채가 보는 자의 감각 앞에 순수하게 제시되었던 것이다. 헬렌 프랑켄텔레의 <산과 바다>를 보았던 모리스 루이스와 케니스 놀란드는 1954년 그녀의 '배어들기'기법을 발전시켰던 '스며들기'로 전혀 새로운 회화를 창출했다.
복수매체 (Multi-Media)
복수매체는 때로 다음과 같이 정의되기도 한다. 1. 서로 다른 물질적 소재를 결합시킨 20세기 미술 오브제의 명칭. 2. 음악, 영화, 무용, 텔레비젼, 컴퓨터, 소리, 빛, 등의 복수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초장르적인 예술행위의 총칭 3. 다양한 소재를 콜라주시킨 미술형식, 예를 들면 아상블라주, 컴바인 페인팅, 환경예술 등의 총칭
복제예술(Copy Art)
원작이 일정한 수단에 의해 모방, 재현된 것을 복제라고 말하며, 이것이 동일작가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는 레프리카라고 한다. 사진 제판술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판화가 미술영역의 복제기술로 많이 사용되어 원작의 단순한 모방적 재현으로 간주되고 있었지만, 사진과 영화 혹은 매스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복제기술에 기초한 제작 자체가 예술로 간주되고 있다. 복제예술은 예술의 대중화와 평행하게 보급되어 작가와 관람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판화, 사진, 영화, 비디오 등 기술의 발전과 대중화 또한 복제기술의 테크놀러지로의 적용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한편, 위작을 용이하게 하는 요인도 되어 모순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잉태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점들은 '예술과 복제'라는 보다 넓은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역사적인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 왔다. 예컨대 회화, 조각과 같은 조형예술의 겅우, 두 가지의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오리지널 작품을 일정한 기술적 수단에 의해 기계적으로 재생산하는 측면이다. (조형예술의 경우는 옛날부터 자주 기법수련과 영리목적을 위해 오리지널을 카피하는 모조품이 널리 쓰였기 때문이며, 이렇게 비기술적 비기계적인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는 조형예술 속의 어떤 장르는 본래 복제 예술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측면으로 회화 속의 그것이다. 순수한 복제예술의 경우에는 오리지널에 해당하는 것이 처음부터 없는데 반해, 이러한 것들은 오리지널과 구별되는 것이다. (판화의 경우, 원판에서 인쇄된 판 가운데 판화가 자신이 일련 번호를 붙인 것만이, 주조 조각의 경우도 석고원형으로부터 형태를 떠낸 상 가운데 조각가 자신이 인정하는 몇 개만이 특별히 오리지널로 간주된다.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복제예술의 대표적인 예는 앤디 워홀이 실크스크린을 사용하여 동일주제를 거듭 되풀이했던 시리즈 작업을 들 수 있다.
북 아트(Book Art)
1973년 뉴욕 근대미술관의 사서인 클라이브 필포트가 <스튜디오 인터내셔널>의 칼럼에서 처음을 사용했던 용어이다. 책의 형식을 통한 조형예술 작업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리브르 오브제, 아티스트 북스와 유사한 의미로 책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그 방법론이나 이념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분석철학과 미술(Analytic Philosophy & Art)
실증주의적 경험론을 이어받은 일단의 철학자들이 관념론적 형이상학적 흐름에 반발하여 일어난 것이 현대의 분석철학이다. 언어를 분석하여 개념과 개념들 간의 논리적 관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그 개념들이 의미하는 사물의 본질을 밝히고 나아가서는 존재세계 일반에 대한 전체적인 체계를 짚어 보자는데 주목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분석철학은 초월적인 사변에 의한 종합적인 세계관, 인생관, 도덕관을 배격하며 또 그 분석 대상도 사물이나 심리현상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지칭하는 언어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현상적 혹은 실험적 방법이 아닌, 논리에 의한 언어 의미의 세부적 분석이 그 공통된 특징이다. 분석철학이 현대 예술에 끼친 영향력은 지대하며 특히 현대미술의 향방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 특히 비판철학을 배경으로 하는 이른바 모더니즘 미술의 자기비판적 경향의 첨예화에 대해 분석철학의 방법론이 던진 일단의 실마리는 예술 그 자체의 정의를 새롭게 할 만큼 큰 힘을 발휘했다. 이를테면 분석철학이 연구 대상으로 했던 언어의 의미에 관한 특유의 분석적 접근방식과 오늘날 미술 흐름 속에서 '시각예술의 의미에 대한 의미의 확인'을 하나의 존재방식으로 한 채 전개되고 있는 일단의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어느 면에서는 현대미술의 전반적이고 기본적인 존재방식이 되고 있기도 하다. 사실 '예술이란 무엇인가?'하는 정의될 수 없는 정의를 기준으로 '무엇을 어떻게 그리며 조각할 것인가?' 라는 기존의 신념 창조행위 대신, 오히려 '예술이란 정의가 과연 어떠한 개념이며 그것을 어떻게 한정시킬 수 있는 것인가'를 기준으로 '무엇을 어떻게 그리며 조각할 것인가 하는 프로세스 자체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을 과제로 전개 "되는 것이 오늘날 미술의 상황이다. 바로 개념미술과 같은 경향은 분석철학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태어난 미술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전통적으로 정의되어 온 예술가로서의 의미, 곧 어떤 사물을 만들고 창조하는 '결과'를 위한 사람이라는 통념을 반성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 세계는 이미 사물(thing : object)로 가득 차 있어서 예술가가 어떤 사물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잘못이라 비판한다.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며, 예술이라는 것은 마음의 어떤 상태 내지 개념에 도달하는 것이어서 그것은 물질이 아니고 개념의 강조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에 관계하는 언어적 접근과 분석이 바로 미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조셉 코쥬드의 <한개의 의자와 세 개의 의자들>은 이와 같은 접근과 분석의 전형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이 작업의 소재는 한 개의 단순한 의자와 이 의자의 사진 복사, 그리고 웹스터 사전에 나와 있는 의자의 정의를 사진 찍어 확대한 문구 등 세 가지이다. 결국 이 작업은 세 가지 형태의 자의 의미를 서로 비교시키는 데 그 핵심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실물과 그것의 시각적인 묘사로서의 이미지, 그리고 언어적 형식의 개념이 각각 어떠한 한정된 정보치를 갖고 있는가를 보이고 있는데 중요성이 있다. 실제의 의자가 나타내고 있는 물질적인 양이 사진과 사전의 개념적 표현에는 결핍되어 있고, 실제의 의자는 사전의 개념규정 속에 완전히 포괄되어 있는 의자의 보편적 특징을 추상적으로 그려낼 수 없으며, 또 사진은 의자의 여러 외관 중 특정한 형태의 의자를 확인시켜 주는데 이것은 사전의 개념규정이 줄 수 없는 정보의 효과이다. 따라서 코쥬드가 예술을 객관화시켜 철학, 언어학 등과 같은 정신적 행위와 동일시하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결국 그가 말한바 "그림이란 조직적인 사고력과 그 진행과정의 문법적 표현이고, 의식형성 행위의 다이어그램이다"라는 맥락과 이어진다. 최근에 이러한 개념미술이 '새로운 개념예술'로 이어져 분석철학의 영향이 얼마나 지속적인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작가라 할 수 있는 제니 홀저는 82년 타임즌 광장에 있는 전광게시판을 사용하여 최초의 일렉트로닉 작품을 선보인 후, 현대문명의 일상성 속에 있는 비정하고 아이러니컬한 감정과 현실을 제시했다. 주로 발광 반도체 소자를 사용하여 간결한 문장의 형식을 공공장소에 게시한 채, 홀저는 언어가 갖는 미묘하고 섬세한 의미전달의 요소를 시각적 차원에서 새롭게 활용, 분석하고 있다.
비디오 스컬처(Video Sculpture)
TV모니터를 영상 및 음성과 함께 사용한 조형작품의 총칭으로, 비디오 인스털레이션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원래는 비디오 아티스트인 구보타 시게코가 60년대 후반부터 마르셀 뒤샹에 대한 경의의 표현으로 바쳤던 <뒤샹피아나> 시리즈의 표현양식에 대해 붙였던 용어이다.
비디오 아트(Video Art)
비디오 아트를 아트를 아트 앤드 테크놀러지의 입장과 완전히 동질의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아직도 결론 지울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그것이 20세기 후반에 예술과 기술의 상관관계가 결코 예사롭지 않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고대 이래 인간 생활에 필요한 용구의 생산이 인간의 손에 전적으로 의탁되던 시대에는 예술과 기술의 관계가 미분화 상태에 머물러 긴밀했다. 그러나 기계생산이 진전함에 따라 예술은 기술로부터 독립하여 자율성을 띠어 근대 이래 20세기 중엽까지 그 관계가 소원했다. 역설적으로 이 관계가 근자에 이르러 다시 긴밀해지면서 예술이 기술(테크놀러지)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제작의 가능성을 넓히려는 의지와 시도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비디오 아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비디오 아트란 무엇보다 우선 20세기 후반부터 급진적 발전을 보이는 테크놀러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술을 통해 찾아보려는 시도로부터 태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미디어에 의해 의식의 지배를 받는 대중매체 시대에 대한 하나의 비판적 계기가 예술의 새로운 개념에 개입된, 복합적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표현활동이라 생각된다. 그런 까닭에 비디오 아트에 아직도 완결된 형식은 태어나지 않았다. 비디오 아트는 한편으로 영상기록 매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며, 또 한편으로는 지극히 개념적인 예술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공간과 환경의 구성에도 결부되어 있고 기존의 퍼포먼스와 연결되기도 하는 까닭에 그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그런 만큼 충격적이고 설득력 있는 작품을 확실히 낳지도 못했다. 때로는 보수적이고 상투적이며 때로는 지극히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을 향유하는 방법도 애매한 때문에 한정된 예술가들의 전유물로 보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디오 아트의 영역적 한계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 세대인 제2세대의 비디오 아티스트들이 제 1세대의 애매모호함을 뛰어넘어 그것을 일상성의 중요한 계기로 활용하고 있는 점은 오히려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1963년 3월 부퍼탈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요셉 보이스 공연에 의거한 <음악전-일렉트로닉 TV>라 이름하는 믹스트미디어의 퍼포먼스가 행해졌다. 바로 한국 출신 작가 백잠준의 네 번째 개인전이었다. 그리고 이는 비디오 아트의 시작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비디오 카메라와 VTR을 사용한 것이 아닌, 오히려 'TV아트'라고 표현하는 편이 좋을 정도의 지극히 기초적인 작업이었다.(1963년 볼프 포스텔이 행한 텔레비전을 통한 영상실험을 최초의 시도라 하기도 한다.)1965년 소니사는 '흑백 오픈릴'의 포터블 VTR과 소형 카메라세트를 선보였다. 백남준은 이를 사용하여 당시 미국 방문중이던 로마교황의 퍼레이드를 기록하여 바로 몇 시간 뒤,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카페 아고고에서 세계 최초의 비디오 테이프 작품을 발표했다. '포터백'이라 불리워지는 이 비디오 시스템은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며 '매스TV'에 대항하는 '얼터너티브(대안) TV'의 미디어로서 CATV,사회운동, 페미니즘 등의 영역에서 활약했다. 그후 컬러 TV와 테이프의 카셋트화를 거쳐 오늘날에는 여러 타입과 스타일의 작품경향이 공존하고 있다. 비디오 영상을 특수처리하여 시각효과를 호소하는 것, 생방송 카메라의 리얼타입 영상을 사용하며 관객의 참가를 전제로 하는 퍼포먼스적 작품, 비디오를 도시와 건축의 요소로 간주하며 환경영상화하는 것, 다큐멘터리의 실마리로 사용하는 것,컴퓨터 그래픽에 의한 '카메라가 없는' 비디오작품 등등. 그리고 홈비디오와 뮤직비디오 분야에서도 전혀 새로운 발상의 작품이 나오고 있다.
비엔날레
격년제라는 의미로 미술의 분야에서는 2년마다 열리는 전람회 및 그밖의 행사를 말한다. 따라서 세계 각지에 갖가지 비엔날레가 있지만, 가장 역사가 길고 권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은 베니스 베니스시에서 짝수 해마다 개최되는 비엔날레이다. 그 밖에 브라질 상파울로의 '국제비엔날레', 파리의 '국제 청년예술가 비엔날레', 토쿄의 '국제 현대미술 비엔날레'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 특수한 영역에 한정된 것으로는 옛 유고의 리브리아나에서 개최되는 '국제판화비엔날레'가 있다. 어느 경우에도 널리 국제적인 행사로서 각국의 기예의 예술가들이 모여 솜씨를 겨루는 대결장이 되고 있으며 현대 미술의 발전에 커다란 자극을 주고 있다. 그러나 수상전형을 둘러싸고 갖가지 논쟁과 때로는 정치적, 상업적 거래가 벌어지거나, 예술가의 매명 행위가 보이기도 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빈 환상파(Wienerschule des Phantastischen Realismus)
오스트리아의 빈 환상파가 국제적인 평가를 얻게 된 것은 사실상 1965년 독일 전시에서였다. 60년대 미술계의 일반적인 동향과 비교해 보면 그것은 지극히 이질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그런 만큼 충격적으로 등장했다. 루돌프 하우스너, 에른스트 훗스, 에리히 브라우어, 볼프강 훗터 그리고 안톤 렘텐이 중요한 멤버이며,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빈 조형예술아카데미의 알베르트 파리스 귄테르슬로 교수를 스승으로 하여 결성되었다. 이는 전쟁의 공포가 겨우 가라앉은 직후의 일이며 그들은 적어도 시류와는 무관하게 각자의 작품세계를 심화시켜 갔다. 이 그룹의 작품들은 대개 어떤 원망에 기초하는 기묘한 환상의 세계를 펼쳐 가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잊혀진 신화적 피안의 파라다이스에 대한 동경인 까닭에, 중세문화가 성당의 내부에 경건한 마음의 기념비로서 조형화했던 신의 나라에로의 원망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의식적인 매너리즘적 양식은 표현에 있어 단조로운 일루저니즘으로 복귀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또한 회화기술의 정묘함에 의한 환상적인 우주신화의 추구를 통해, 전쟁에서 체험했던 혼돈에 대한 기억은 완전무결한 자연에 대한 중세적인 환영, 삐뚤어진 아이러니의 거울을 통해서만 재현될 수 있도록 바뀌어갔다. 이른바 목가적인 카오스 속에서 모든 생물이 합리주의에 거역하지 않고 공존 할 것을 원하는 빈 환상파의 시각은, 면밀한 정확성을 가지고 각각의 제재를 표현했던 네덜란드와 이태리의 전통적인 기법 답습에서 그 회고적 취향의 면모를 찾을 수 있다. 보슈, 렘브란트, 브뤼겔, 보티첼리 등이 바로 빈 환상파의 기법적 모델이 되었던 까닭이며, 이후로는 귀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도 역시 모델이 되었다. 한편 서정성과 장식성을 갖는 구약성서의 이야기와 묵시록적인 환상은, 투명한 색채에 의한 화려한 색장식과 조명 그리고 감상적인 정열에 의해 표현되는 회화적 이미지의 신화적 소재를 이루고 있다. 감미로운 시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화면은 결코 과장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수한 회화의 뼈대가 공상을 매너리즘화하는데 있어서 일종의 제어장치로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비현실적인 표현세계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능성을 의식하여 구성되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이성에 의해 질서 잡힌 인생과 사회기구 내부에 있어서 인간 심리의 소외의 동일적 분열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루돌프 하우스너의 경우, 정확한 대상묘사와 기괴한 리얼리즘의 색채 뉘앙스는 내부세계와 외적세계의 대조적인 관계를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그의 <아담>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아담과 그 기관수>는 내면으로 향한 렌즈를 통해 만인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을 영원한 아담상으로의 자아분열을 환상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훗스는 특유의 신비주의를 거장들과 같은 기술로서 실현하고 있으며, 렘텐은 풍경화를 그리고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정신성을 개입시킨 것이다. 그리고 브라우어는 내부세계에 대한 기묘한 동화적 이야기꾼으로서, 훗터는 화려한 원색에 의해 역설적으로 내면을 구성해내고 있다.
사운드 아트
시각예술로서의 조형예술이 '시각'을 위주로 해왔던 것임을 염두에 둘 때, '청각'을 도입한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장르를 넘어선 종합예술적 의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운드 아트는 시각예술을 위한 장소로서의 화랑, 야외환경, 공공미술전시장, 퍼포먼스 공연장소 등에서 전시되거나 카세트 테이프 형식의 잡지로 발표되는 것이 보통이다.
사이버네틱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수학자 로버트 위너가 제창했던 사이버네틱스(인공두뇌학)에 기초하는 과학기술에 의해 예술의 환경화와 사회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195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외부환경의 빛, 소리, 움직임, 온도 등의 정보를 각종 감응장치에 의해 감지하고 그 정보에 따라 작동하는 피드백기구를 갖춘 장치나 작품이 50년대에 제작되었다.
사이키델릭 아트
원래 LSD 등 '환각제를 복용한 체험'에서 만들어진 예술용어. 어원적으로도 '사이키'는 '정신'을 의미하고 '델릭'은 '확대'의 뜻으로 '심상을 전개한다' '정신을 확대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마음을 개방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이라는 정의로 사용된다. 동의어로는 '환각예술' '사이키 조의 예술' 'LSD 아트'등의 명칭이 있다. 특히 환각상태에서는 환시와 환청을 작품으로 재현한다는 뜻으로 보통 사용된다.
상파울로 비엔날레(Sao Paulo Biennale)
1951년 브라질의 상파울로에서 창설된 격년제 국제 미술전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함께 중요한 현대미술 발표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중복되지 않는 해 가을에 상파울로 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된다. 베니스 비엔날레처럼 커미셔너 제도를 두어 작가선정 및 전시조직을 하고 있으며, 수상제도는 제 15회(1975) 행사에서 폐지했다가 89년부터 부활시켰다. 근자에는 테마를 설정하여 주최측의 기획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91년의 제 21회 비엔날레에서는 돌연 공모제도가 실시되는 등 그 운영이 매끄럽지 못해 참가국이 당황하는 경우도 있어 전망이 밝지만은 않은 듯하다. 우리나라는 1963년 제7회 행사(커미셔너 김환기) 이래 매회 빠짐없이 참가해 오고 있다.
샘플링 아트
'샘플링'이란 말 그대로 견본이나 표본을 뜻하지만 미술용어로는 보다 다양한 뜻을 지닌다. 시뮬레이셔니즘, 네오지오, 어프로프리에이션등의 개념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미 완성된 유명한 명작을 도용 내지 차용하여 쏙 빼닮은 작품을 만들어낸 채, 의식적으로 개성과 상상력을 포기하도록 하는 양식을 의미하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에서도 샘플링 아트가 가장 극단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생산미학(Generative Aesthetics)
막스 벤제는 그의 저서 <정보론적 미학입문>(1969)에서 '생산미학'의 의미에 있어서 창조의 프로세스를 '개념의 단계'와 '실현의 단계'로 구별했다. 그리고 그는 생산미학을 '지식 및 정보의 저축을 지령으로, 지령을 절차로, 절차를 실현으로' 옮겨놓는 '수학적 기술학적 이론'이라 정의했다. 개념예술의 경우, 예술적인 지령을 수요자가 받아들이기 가능한 절차로 바꿔놓는 일은 예술행위의 최종단계를 의미하며 따라서 물적인 실현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예컨대 독일의 실험작가 팀 울리히스의 <살아있는 예술작품>(그는 자기 자신이 예술이 되며 예술작품으로서 살아간다고 주장했고, 이 극단적 발상에 대해 당시의 베를린 당국은 실현을 금지시켰다.)의 계획이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해야만 한다. 결국 생산미학이라는 것은 예술의 체험 전달에 관한 프로세스를 이론적으로 추적하는 미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술적 미술(Narrative Art)
이야기 미술(Story Art)이라고 하는 이 개념은 원래 사진과 텍스트를 사용하여 매우 주관적인 방법으로 사건과 역사를 설명해가는 개별적 신화의 한 방향을 의미한다. 이 경우 대부분 사진은 연속적인 형상으로 제시되며 부수되는 텍스트로 주석을 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경향은 이야기, 유명한 역사적 사실, 성서에 쓰여진 세계 등의 한 장면과 중요한 부분을 회화를 비롯한 시각표현으로 도입하는 것을 주된 방법론으로 삼는데, 퍼포먼스와 비디오 표현까지 포함한다. 이야기나 서술적인 요소는 고대 이래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주된 표현 내용이 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현대미술에서는 가장 기피 외면된 요소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특히 모더니즘 이래로 미술이 지향했던 시각예술의 독자적인 자율성 전개를 염두에 둘 때 하나의 방해 요소에 불과한 것이기도 했다(현대미술에 있어 '문학적'이란 용어 사용 자체를 모욕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그러나 1963년 이후 많은 유럽화가들이 서술적인 요소를 미술 속에 끌어들여 새로운 형식을 전개시키기 시작했으며, 프랑스의 비평가 제를드 가쇼-탈라보는 이 새로운 경향을 규정하기 위한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1965). 오늘날 서술적 미술은 줄거리가 있든 없은 하나의 캔버스 위에 여러 사건들을 집합적으로 묘사하며, 그 이미저리는 때로 비틀어지고 주제의 내용도 단편화되기도 한다. '서술적인 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는 영국의 비평가 제시아 라이하르트는 이미지의 탈바꿈을 다루는 추상회화도 이 범주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이른바 '피규라시옹 나라티브(Figuration narrative)'라고 하는 이 경향은 팝아트, 일러스트레이션 양상과 서로 조화를 이루며 영화와 연속만화의 영향을 받았다. 피규라시옹 나라티브는 70년대 이후의 스토르 아트 경향과는 어느 면 구별되고 있는데, 개념미술의 프로세스적 요소와 비슷한 면을 지니는 동시에 그것과는 또 다른 차이를 나름으로 가지고 있다. 기실 스토리 아트는 개념미술의 경우보다 훨씬 부담없는 스토리의 전개를 지니며, 그것은 '고민하고 배우라'는 모토를 내세우지 않고 접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도 한다. 그래서 작업은 전반적으로 가볍고 아마추어적인 인상을 주며 다소 도피적이고 의도적으로 무표정한 접근을 하기도 한다.
설치작업
'인스텔레이션'은 주로 미국의 미술잡지들이 전시된 작품의 구성을 보여주는 사진을 설명하는 글에서 흔히 쓰던 말이다. 그런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최근의 예술이 화랑의 특정한 공간이나 배치에 의존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인스텔레이션 전시는 본래 일회적인 사건일 뿐이므로, 작품 하나를 사진으로 보여준다고 해서 작품과 주위 공간과의 본질적인 관계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인스텔레이션이란 말은 또한 작가가 주문하는 설계도에 따라 공장에서 제조되는 미니멀 조각과 연관되는 산업적, 기계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섬유작업
1960년대부터 왕성하게 된, 섬유소재에 의한 자유로운 표현작업. 포, 실 등 섬유를 소재로 하여 짜고, 엮고, 집고, 잇고, 맞붙이는 등 손을 통해 만든 조형적 작업을 말한다. 예컨대 타피스르리와 염직 등의 작품이 평면적인데 비해 이 섬유작업의 분야에는 보다 자유로운 발상에 기초하는 입체적인 조형작업이 많다. 의복의 소재인 섬유뿐만 아니라 금속실과 나무, 종이, 털 등도 사용되며 직물작가, 염색가 이외에 조각가들의 시도도 많다. 오늘날에 와서는 새로운 매체의 개발과 동반하여 순수미술의 깊숙한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다.
세라믹 조각
현대미술에 있어서 재료의 확대선택은 어느 것이나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현대미술의 전개와 맥을 같이하며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세라믹 조각 역시 그와 같은 맥락을 같는 전형적인 것이다. 그 기본 의미는 무엇보다 점토로 만들어진 모든 입체 예술작품을 가리킨다. 또 나아가서는 주로 공예적 성격의 기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던 요업의 소재인 점토를, 하나의 순수한 조형재료로서 예술적 의미를 확대시킨 용어라 할 수 있다.
세미오틱스
말 그대로 기호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영미 쪽의 것을 기호론, 유럽계의 것을 기호학이라 번역하는 것이 관례이나 최근에는 기호론이 우세하다. 어쨌든 기호를 문제로 삼는 데는 두 가지의 입장이 있는데 하나는 특정 제도 안에서 사용되어지는 기호와 그 지시대상과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전체를 기호체계라 보고 그 발생을 연구하려는 입장이다.
세이프드 캔버스
서양화, 특히 유화를 위한 전통적인 네모난 평면의 캔버스와 비교하여, 2차원 또는 3차원의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고 만들어진 캔버스를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변형된 캔버스나 자의적으로 짜맞추어 사용하는 캔버스에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 개념은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변형된 특수한 형태의 캔버스를 말하며, 이 형태 자체가 작가의 작품에 대한 표현의도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러한 캔버스를 사용한 작품 그 자체, 그 전체를 통틀어서 세이프드 캔버스라 부른다. 기본적으로 회화로 그려진 그림의 표면과 그것을 떠받치는 바탕으로서의 표면이 서로 일치했을 때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소더비
미술품의 경매회사로는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회사. 18세기에 서적상으로 출발하여 2차대전 이후 미술품 경매를 시작했다. 런던과 뉴욕을 주로 하여 세계 각지에서 경매를 주최하고 있으며, 근자의 화제가 되었던 고액의 명화거래의 대부분을 취급해왔다.
소츠아트
70년대 옛 소련에서 에릭 블라토프, 일리야 카바코프, 코마르 멜라미드, 알렉산드 코슬라포프, 알렉산드 율리코프, 레오니드 람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비합법적인 언더 그라운드 운동을 가리킨다. 용어 자체는 체제에 대한 사회적 대항성에 기초하여 소츠(사회파)라 코마르 멜라미드가 1972년 명명했다.
소프트 스타일
주로 현대조각의 하나의 실험적 성격을 나타내는 일종의 양식 개념이다. 조각이 그 최종적 모습을 보존하기 위한 굳은 재료의 사용이라는 고착된 관념으로부터 탈피하여, 부드러운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조각의 전통적 속성인 보수성과 수구성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던 경향이다.
소호
뉴욕의 하우스톤 가와 커널가 사이의 화랑 밀집 지대. 소호라는 명칭은 하우스톤 가의 남쪽의 약어로, 원래는 공장 지대였다. 전후의 맨하탄이 국제 무역 도시로 성장하자 무역상, 일반 사무실, 호텔 등의 수효는 급증했으나 공장들은 점점 필요없게 되어 문을 닫거나, 아니면 시설을 줄여 한두 층을 비우게 되어 뉴욕에서 집세가 가장 싼 지역이 되었다. 자연히 1950년부터 이 지역으로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들었고, 60년대 초부터는 추상 표현주의가 팽창하면서 화랑들이 대형 작품들을 수용, 보관할 장소로서 소호의 창고가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하나씩 둘씩 모이기 시작, 급기야는 화랑과 예술인촌으로 변모했다. 이곳에서 옵아트, 극사실주의, 개념미술, 미니멀 아트, 후기 모더니즘, 신인상주의 등 미국적 뉴아방가드르라는 말로 묶을 수 있는 각종 현대 미술의 조류들이 탄생했다.
수정주의
미술사 연구에 있어서 과거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며 지금까지 고정된 시각을 수정하려고 하는 경향. 70년대 중반 특히 모더니즘 중심의 관점으로 19세기 미술을 재검토하는 작업이 주목되어졌다. 이런한 재검토를 통해 멧소니에, 브이그로, 서젠트 등 그다지 중요시되지 않았던 화가들이 재평가되었다.
쉬포르/쉬르파스
프랑스 화가들로 결성된 전위적인 미술단체를 가리키지만 때로는 그 기법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그룹은 BMPT라는 그룹의 회화적 우상파괴에 대한 하나의 반동으로 형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은 '그림 그리는 것은 아직도 가능하다. 다만 회화적인 방법의 개조가 필요할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슈퍼 리얼리즘
팝아트 이후, 1965 ~70년 사이 미국 미술에 나타났던 새로운 경향의 하나.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거의 동시에 나타나 여러 가지 현상으로 등장했던 까닭에 그 명칭도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하이퍼리얼리즘, 포토리얼리즘, 래디컬리얼리즘, 샤프 포커스리얼리즘, 마이뉴트 리얼리즘 등이 그것이다.
스카이 아트
스카이 아트라는 것은 허공을 대상으로 한 예술. 허공을 무대로 한 예술을 말하며 미국의 현대미술에서 많이 행해졌다. 1981년 보스톤에서 열린 <스카이 아트 회의 81>에서 문제로 제시된 허공은, 단순히 지상에서 올려 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공간으로서의 허공이다. 이렇게 포착된 허공에 어떠한 예술이 가능할 것인가가 여러 가지로 시도되고 토론되었다. 따라서 작품으로서 독립하기보다는 이벤트로서의 실험이 주류이며 그 경향도 다양하다.
스타일
문학이나 회화 등의 예술제작에 있어서의 독특한 방식을 뜻한다. 예술적 표현 혹은 특유한 방식으로 작품에 나타나며 작품의 형식적 통일을 특징짓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서 양식이라 번역한다.
스태빌
움직임이 없는 정지된 상태의 조각. 이 개념은 알렉산드 칼더의 '모빌(움직이는 조각)'이란 용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1932년 칼더가 파리의 비뇽화랑에 처음으로 움직이는 조각 '모빌'을 발표했을 때, 이를 본 장 아르프가 이전의 움직임이 없는 철사조각을 일괄해서 부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강철로 만들어진 기념비적 조각도 여기에 포함되었는데, 공기처럼 가벼운 알루미늄의 '모빌'에 비해, 강철로 된 '스태빌'은 필연적으로 대지의 중력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즉 스태빌은 칼더의 작업에 있어서 모빌조각을 제외한 모든 정지된 조각을 다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스테이닝 기법
1960년대 칼라필드 페인팅의 중요 기법 중 하나로 이른바 착색기법, 얼룩기법, 혹은 삼투기법(스며들기) 등을 일컫는다. 붓을 사용해 물감을 칠하지 않고, 초벌칠이 되지 않은 캔버스에 물감을 부어버림으로써 삼투되거나 얼룩지게 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의 대표주자로는 모리스 루이스를 들 수 있다. 루이스의 스테이닝 회화는 추상 표현주의자들의 작품과는 아주 다른 물질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채색과정은 색채의 형태와 명암에 대한 반동을 의미한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색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색채 속에 색채를 더할 수 있는 독자적인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더 나아가서는 폴록이 입체파에게서 물려받은 얇은 공간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뉴만과 로드코의 희미한 상징적 공간에 비해서도 훨씬 실재적인 '평면성'을 성취하게 되었다. 이 기법은 케네드 놀란드, 줄레스 오리츠키, 폴 젠키스가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에 걸쳐 보다 광범위하게 전개시켰다.
스트레이트 포토그라피
회화적 사진에 대해 반발적 의지를 담은 '정통사진'이란 뜻이다. 이 용어는 1904년 평론가 사다키치 하트맨이 <카메라 워크>지에 기고한 사진전시회평에서 사진작가들에게 '정통적 방식으로 작업을 하라'고 충고한데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작가이며 출판업자, 평론가 및 화랑주인이었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치의 적극적인 추진에 의해 하나의 운동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 이것은 사진의 예술적 규범에 가장 큰 프레임으로 사용된 회화적 가치관을 없애고, 사진이 스스로의 표현양식으로 자립해야함을 강조하는 운동이었다.
따라서 그때까지 즐겨 사용되던 고무인화, 글리세린 처리, 음화와 양화 위에 그리거나 이를 긁어 지워버리는 방법 같은 기교적인 암실작업을 배격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대신 사진기의 기본적인 기능과 인화과정에 더욱 중점을 둘 것을 주장했다.
스트로크
원래의 뜻은 한 차례의 움직임, 일격, 타법 등을 의미하나, 예술에 있어서는 '필법'을 의미한다. 그러나 손가락 끝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필촉과는 달리, 큰 붓으로 크게 팔을 휘둘러 선을 이끄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그 선은 두텁고 폭이 넓게 된다. 터치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회화에 스트로크가 보여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등과 같이, 그리는 행위의 출발지점을 드러내는 예술에서는 스트로크가 필연적으로 크게 강조되었다.
스파치 아리스모
'공간주의'란 뜻. 미래주의 이후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예술운동의 하나로,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의 공간을 거부하고 빛 등의 새로운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현실공간의 형태나 색을 확장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1940년대 후반 루치오 폰타나의 제자에 의해 전개되었던 운동이다.
시각예술 탐구그룹
1960년 르 파르크의 제창으로 결성된, 파리에 머물고 있던 키네틱 아트 작가 그룹. 회원은 가르시아 로시, 프란시스코 소브리노, 프랑스아 모를레, 이바랄을 포함한 여섯 명이다. 개개 회원의 자유로운 연구를 모아서 보다 고차원의 그룹 활동에 활용하고 종래의 관람자와 분리된 작품이라는 고정 관념을 극복할 것을 목표로 출발해, 1961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관객의 참가를 전제로 하는 <미로>를 공동제작 발표하였다. 이들은 주로 반사경, 알루미늄, 비닐, 아크링, 플라스틱 등의 공업재를 재료로 모빌이나 회전하는 작품 등을 구성하여 거기에다 다시 빛을 주어서 난반사의 효과를 내게 했다. 이와 같이 키네틱한 것과 옵틱한 것을 결합시킴으로써 이 그룹이 추구하는 바는 관람자를 새롭고 직접적인 상황 속에 이끌어들이는 것이다. 1968년 4월 마그 미술문화재단에서 열린 '살아 있는 예술전'에서는 빛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관객을 금속에 의한 정글로 이끌어들었다.
시그날 아트
공공의 신호기와 교통표식이 갖는 시각적, 심리적 효과(보통은 자극효과)를 예술적인 모티브로하여 전개하는 미술경향.
시니피앙, 시니피에
기호표현/기호내용, 혹은 의미하는 것/의미되어지는 것 등으로 번역되어진다. 즉 표현되어진 기호가 '시니피앙'이며 이 기호에 의해 나타나지는 내용이 '시니피에'이다.
시드니 비엔날레
1973년 호주 시드니에서 시작한 국제 미술전. 디렉터와 사무소 책임자를 제외한 사무국 직원은, 그때그때 모집된 여성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제적 예술계에 호주의 미술계를 편입시키려는 강한 의욕을 나타내고 있는 조직이다.
매회 테마를 결정하고, 캐스터와 큐레이터를 초청해 기획을 다듬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큐레이터들을 미리 참가국에 보내 조사, 절충하기 때문에 기획측의 정책이 참가자들에게 침투하기 쉬운 반면, 참가국의 독자적인 생각이 반영되기 어렵다.
시리즈 미술
반복되는 성격이나 조를 이루고 있으며, 구성주의에 발판을 둔 구조적 연속적 절차를 지닌 미술의 한 표현원리이다. 유사한 개념으로느 시리얼 이미저리(Seial Imagery)가 있는데, 이는 회화나 조각에 있어서 약간 변화된, 같은 이미지가 몇 번에 걸쳐 계속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시뮬레이셔니즘
시뮬레이션이란 원래 '모조품을 만들다'라는 의미였지만, 오늘날 일반적으로 현실의 현상을 컴퓨터 등의 기계장치에 의해 모방적으로 재현하는 실험을 말하며, 통상 '모의'라고 번역된다. 시뮬레이션과 '시뮬레이크럼' 그리고 복수인 '시뮬레이크라'는 최근 미술평론에서 사실상 동의어로 취급하고 있다. 시뮬레이셔니즘은 그러한 움직임 전체를 의미하는 용어로, 1980년대 중반 잠시 유행했던 개념이다.
시위예술
원래 모든 예술이 기본적으로 시위성을 지닌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 개념은 대단히 폭넓은 것이 된다. 그러나 시위예술이라고 말할 때는, 의식된 태도와 활동을 위해 자신을 체험시키는 일종의 훈련적 실천을 의미한다. 즉 하나의 특수한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고, 사건의 경과 속에서 그 행동은 '조건 인과관계'로서 나타나며, 정확히 이를 인지하는 행위이다. 보통 해프닝, 이벤트, 프로세스 아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향이다.
시추에이셔니즘
1957년 7월 이탈리아의 코시오 다로시오에서 결성된 그룹 인테나시오날 시투아시오니스트가 계기가 되어 추진된 '국제 상황주의 운동'이다. 이 그룹은 앞서 있던 아방가르드 그룹 레트리스트 인터내셔널(문자주의 바우하우스 운동)과 이미지니스트 바우하우스(상상주의 바우하우스 운동)를 형식상 통합시킨 결과로 나타났다.
시크테믹 페인팅
'조직회화' '체계미술' '전신적 회화'라 번역되며, 1966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로렌스 알로웨이가 큐레이터로서 기획한 전시회 제목에서 유래한, 회화의 한 양식이다. 이는 '하나의 시스템이나 플랜에 따라 배열 또는 제작된다'는 뜻이며, 폭발적인 자기표현의 유기적 성격에 반대하여, 냉랭하게 어떤 룰을 스스로 부과해가며 그리는 경향을 의미한다.
신구상
신구상은 프랑스 비평가 장 루이 페리에와 미셀 라공이, 전후 추상미술에 대립하여 1960년대 초 새롭게 부활한 형상화 경향을 '누벨 피귀라숑'이라 한데서 유래하며, 파리 마티아스 펜스 화랑에서 열린 두 번의 전시회에서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신체예술
신체예술은 60년대 말과 70년대에 나타났던 미술양식으로 예술가의 신체를 표현과 조형매체로써 직접 사용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신체를 통해 행위 전개를 중시했기 때문에 보통 행위예술 혹은 행동미술과 동일시된다.
실크 스크린
판화 기법의 하나. 세리그래프라고도 한다. 공판에 의한 판화로서 원리는 등사판과 같다. 다만 등사판이 원지를 사용하는데 반해, 실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게 되었다. 현재에는 실크 이외에도 합성섬유가 많이 쓰이고 있다. 인쇄 기법을 아주 간단하여 실크 등의 천을 틀에 넣어 고정시킨 다음, 인쇄되지 않는 부분에 종이나 아교 또는 아라비아 고무액을 입혀, 잉크가 통하지 못하게 한 다음, 잉크를 부어 롤러나 스케이지(고무로 만든 기구)로 누르면서 밀면 인쇄가 된다. 다른 판식에 비해 잉크가 많이 묻기 때문에 색상이 강하고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그 단순하고 강렬한 시각적 효과 때문에 일찍부터 포스터 등 상업미술에 많이 이용되어 왔다.
심볼
다의적인 개념으로 '상징' '표상'으로 번역되며, 일반적으로 감각적인 형상이 그 본래의 의미에 덧붙어 비본래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어의 synballein(접합하다)에서 유래했다. 기독교 미술에서 단적으로 보여지는 것 같이 어떤 중요한 관념을 나타내며, 특정한 이미지를 말하는 개념이 되었다.
아방가르드
아방가르드는 전위, 선두, 선구 등의 뜻으로 프랑스어의 군사 용어인 '전위부대-부대의 전초로서 선발된 소수 정예부대'에서 나온 말이다. 정치적 의미로 오늘날에는 좌익과 같은 말로, 특히 예술상으로는 인습적인 권위와 전통에 반항, 혁명적인 예술정신의 기치를 내걸고 행동하는 예술운동을 말한다. 따라서 특정의 주의나 형식을 가리키는 용어라기보다는 신시대의 급진적인 예술정신 전반에 걸쳐서 사용되는 말이지만,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추상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중심으로 한 조형 활동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이들 활동의 배후에는 기계 문명의 발달, 무의식 세계의 규명, 원시 예술의 발굴, 사회 의식의 확대 등 신시대적인 여러 요인이 내포되어 있다. 또한 이 말은 반자연주의라는 점에서 동시대의 문학, 연극, 영화 등의 분야에 있어서도 그 실험적, 혁명적인 행위에 대해서 쓰여진다.
아르브류
장 뒤뷔페가 1948년에 주창한 '원생미술' 혹은 '생의 미술'. 어린이나 소박한 미술가 또는 정신병자 등 교양적인 예술이나 전통적인 예술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제작한 미술을 말한다. 인간 삶의 기반이 표현된 미술로 1945년 뒤뷔페 자신이 처음 용어를 만들어 냈다.
아르테포베라
원래 이탈리아의 비평가 제르마노 첼란트가 명명한 용어. '가난한' '빈약한' '헐벗은' '궁핍한' 미술이라는 뜻으로 지극히 진부하고 평범한 것을 예술적 영역으로 진입시키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모래, 시멘트, 돌, 나뭇가지, 신문지, 석탄 등 아무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구체적인 사물들을 가능한 한 손질을 적게 하여 배치하거나, 주위 공간의 환경성을 통해 현실세계에 대한 작가의 태도 예컨대 자연, 에너지, 인위성, 언어, 신체 물질, 신화, 초자연 등에 관한 사색과 성찰을 은유적 이미지로 나타낸다.
아상블라쥬
'집합', '조립'등의 뜻. 평면적인 타블로 회화에 삼차원성을 부여하는 기법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잡다한 물건이나 폐품 따위를 조립해서 작품을 만드는 일이나, 또는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종이 대신 오브제를 써서 만든 삼차원의 콜라주나 콜라주 조각을 말한다
아웃사이드 아트
원래 '권외자' '국외자'란 뜻으로, 미술사에 있어서는 주류를 이루는 흐름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경향을 통칭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미술에 있어 그것은 보통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아마추어적 흐름을 나타낸다. 즉 소박파 미술, 아르브류를 직접 지칭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아이 에프 티 I.F.T
1984년 장 프랑소아 블랑, 도미니크 파스카리니, 필립 토마 3인에 의해 파리에서 결성된 아트 에이전트 그룹. 1988년 토마가 탈퇴하여 현재는 두 사람만이 활동을 계속학고 있다. 이 그룹은 이름대로 '정보' '픽션' '광고'라는 세 개의 양상으로 예술작품의 성립을 재정하고 인쇄, 사진, 포스터, 오브제, 영상 등의 설치에 의해 유통하는 가치교환의 체험구조를 제시한다.
아이러니
일반적으로 '비꼼'이나 '역설'을 의미하며 '반어'라고 번역한다. 원래 무지를 가장한 문답법에 의해 '아는 자'를 자처하는 소피스트들을 몰아세웠던 소크라테스적인 역설적 수사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긍정과 부정의 상호침투적인 성격과 야유적 기분이 결합한 일종의 기지적 표현에 숨겨진 표상 내용을 나타낸다. 보통 표현효과를 강하게 하기 위해 의문형으로 말함으로써 반대로 강한 긍정을 나타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랴'등이 그 예이다. 풍자만큼 예리한 공격성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유머만큼 우월적 애타성도 결여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미술으 경우 정치적으로 사용되면 효력을 발휘하는 일이 많다. 베를린 다다기의 포토몽타주 등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아크릴릭 컬러
아크릴계 합성수지인 메타크릴산 메틸을 기초로 하는 폴리머를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안료, 이 물감은 독일의 테르너 박사 등에 의해 처음 연구되었지만, 1950년경 미국에서 대량으로 사용되었고, 유화물감에 비해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보급되었다.
콤포지션(composition)
구도, 화면에 색, 모양, 선 또는 인물이나 풍경 물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른 계획.
타블로(tableau)
원래 널빤지 그림을 가리키는 말로 후에 벽화나 천장화 같은 건물의 한 부분을 이루는 그림을 제외한 액자 그림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습작이나 데생에 대해 완성된 그림을 타블로라고 한다.
프로포오션(proportion)
비례 또는 비율을 가리키는 말로 일정한 크기의 화면 속에 차지하는 물체의 크기의 비례, 황금 비율(그림이나 조각에서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비율)이나 그리스 조각에서 볼 수 있는 7등신, 8등신 등의 비율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