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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나눔/지식과상식

영화속 그림들의 숨겨진 비밀

영화속 그림들의 숨겨진 비밀





교과서에 등장하는 ‘명화’라는 이름의 그림들을 보기 위해 꼭 해외의 미술관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다.
<다빈치 코드>부터 복잡한 수수께끼로 악명이 높았던 <텔 미 썸딩>에 이르기까지, 이름난 명화들을 거대한 스크린 안에서 만날 수 있다. 게다가 단순히 미적 즐거움만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림들은 때로 영화 속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가장 큰 단서가 되어준다. <거울 속으로>에 등장하는 얀 반 아이크의 그림이 감춘 비밀은 무엇일까? 김기덕 감독이 몇 년의 시간 차를 두고 만든 <파란 대문>과 <나쁜 남자>에 똑같은 에곤 실레의 <흑발 소녀의 누드>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의 수수께끼는 이제 모두 풀렸다!

거울 속의 당신은 누구?! <거울 속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야” <거울 속으로>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만일 거울 속의 당신이 당신과 다르게 움직인다면? 거울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고 그것이 실물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도발적일 뿐 아니라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운 이러한 설정은 영화의 미스터리적 완결성 문제와는 별도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거울 속으로>가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들은 바로 실상을 반영하지 않는 거울을 이용한 장면들. 최초에 <거울 속으로>에 영감을 불어넣은 것으로 알려진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적인 그림과 얀 반 아이크의 극사실주의적이되 교묘한 트릭이 숨어 있는 그림은 영화에서 반복 등장하며 신비감을 고조시킨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얀 반 아이크
정밀묘사풍의 북유럽 걸작 중 하나. 그림 앞에 서면 마치 손으로 만져질 듯한 옷의 질감과 인물들의 얼굴이 강렬한 입체감을 느끼게 만든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작가가 이들의 결혼식이나 약혼식에 입회해 그린 초상화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거울 위에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었노라. 1434.”라는 문구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기는 해도 별 신비는 없을 것 같은 이 그림이 공포영화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온 것은 거울 속의 이미지 때문이다. 전면에는 신랑과 신부가 있고, 후면에는 볼록거울이 하나 있다. 볼록거울을 확대해보면 현장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그림을 그린 얀 반 아이크 자신. <거울 속으로>는 이 정적인 그림에 묘한 신비감을 부여하면서, 카메라가 렌즈의 반대편까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하고.

같은 모습에서 진짜 찾기,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007이 억만장자가 되었다면 딱 토마스 크라운 같았을 것이다. 실제로 007 시리즈에 출연하기도 했던 피어스 브로스넌은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 매력적이지만 약간 괴팍한 억만장자를 연기한다. 미술품을 훔치는 억만장자와 그를 수사하는 보험수사관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의 주요 배경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다. 토마스 크라운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훔쳤다가 되돌려놓는 그림은 클로드 모네가 1908년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그렸던 <황금빛 저녁놀에 싸인 베네치아 궁전>이다. 이 그림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다시 그 존재를 드러내는 트릭은 물감의 특성을 절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인간의 아들> 르네 마그리트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의 절정 대목에 등장하는 그림. 토마스는 캐서린에게 훔쳤던 그림을 미술관에 되돌려놓기 위해 갈 것이라고 미리 얘기하고, 결국 토마스를 잡기 위해 경찰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대거 투입된다. 그런데 단 한명의 토마스를 잡는 일이 미션 임파서블이다. 토마스는 검은 코트 차림으로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중절모를 눌러 쓰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미술관에는 똑같은 차림새의 남자들투성이다. 애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의 트릭을 연상시키는 이 대담함은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아들>이라는 그림으로 상징되는데(가짜 토마스의 가방 안에서 이 그림의 복사본이 쏟아져 나온다) 얼굴이 사과로 가려진다면 인간의 아들들을 서로 구별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 것인가. 이 대목에서 흘러나오는 니나 시몬의 노래도 놓쳐서는 안 될 아름다운 곡이다.

성배에 대한 또 다른 해석, <다빈치 코드>

아는 그림도 다시 보자. 전세계를 휩쓴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하는 <다 빈치 코드>는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다 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서 시작, <최후의 만찬>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다빈치 코드>의 주장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기독교 단체들의 엄청난 항의를 받기도 했다. <다빈치 코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속 스케치와 같은 모습으로 죽은 루브르의 큐레이터 소니에르에게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소설과 영화에 등장하는 수수께끼는 그림과 애너그램에 걸쳐 있다. 소니에르의 시체 옆에 있던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O, Draconian Devil!) 오, 불구의 성인이여!(Oh, Lame Saint!)’라는 문구를 애너그램으로 풀어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모나리자!(The Mona Risa)’가 된다는 건 놀라움의 시작일 뿐이다.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인디아나 존스>는 성배가 예수의 피를 받은 잔이라고 했다. <다빈치 코드>는 성배가 여자라고 주장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그런 암시를 주기 위한 그림이라는 것이 <다빈치 코드>의 설명. 만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모두 남자들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자세히 보면 예수의 오른 쪽에 앉은 인물이 여자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한다. (흐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과 모아쥔 섬세한 손, 그리고 살짝 솟은 가슴이 증거다.) 예수가 결혼했으며, 아내가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것. 그림으로 보면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는 거울에 비친 듯한 영상으로 몸을 반대쪽으로 기울이고 있으며, 옷 색깔 역시 음과 양을 상징하듯, 거울에 비친 듯한 색 배치로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V자 모양의 공간이 생기는데, 이 V는 성배와 잔, 여자의 자궁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게다가 두 사람 몸의 실루엣을 보면 그림 한가운데에 M자를 만드는데, 이는 결혼(Matrimonio)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성배에 관한 전설은 왕족의 피에 관한 전설이 되고, 선배는 그리스도의 피를 담은 잔, 즉 왕족의 혈통을 품은 여자의 자궁(마리아 막달레나)이 된다. 성경과 <다빈치 코드>의 주장 중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는지는 각자의 믿음에 달린 문제겠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은 분명 논란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참혹한 살인사건 예보, <텔 미 썸딩>

고어 스릴러물 <텔 미 썸딩>에서 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한 그림은 두 점이다. 일단 영화가 시작할 때 벽을 따라 훑듯이 보이던 그림이 해럴드 다비드의 <캄뷰세스 왕의 재판>이다. 감독이 영화의 제작 동기가 되었다고 밝힌 그림이기도 하다. 그리고 채수연(심은하)의 별장에 걸려 있던 그림은 존 에비릿 밀레의 <오필리아>에서 힌트를 얻어 그린 것이다. 불행히도, 온갖 그림과 단서와 사진들이 등장함에도 <텔 미 썸딩>의 미스터리는 풀릴 줄을 몰랐지만, 그림이 사건으로 연결되는 이미지만큼은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캄뷰세스 왕의 재판> 헤럴드 다비드
캄뷰세스 왕은 기원전 6세기에 재위한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전제군주였으며 그림 속에서 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당하는 희생자는 시삼네스라는 판사로 추정된다. 흐르는 피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고 화폭에 담는 이 사실주의적 화풍은 피부를 벗겨내는 사나이에 이르면 섬뜩하기 그지없다. 이 그림은 모든 판사와 시참사들에게, 영원히 타락하고 부패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부정부패에 내려지는 인간의 형벌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그림이 <텔 미 썸딩>에 등장한 것은 앞서 말한 그림의 맥락과는 관계가 없으며, 그림 속 광경 같은 참혹하고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예고하는 뜻이다. 특히, 한 사람의 살인에 여러 사람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상처받은 영혼, 상처받은 여인, <파란 대문>

김기덕 감독의 <파란 대문>은 <나쁜 남자>와 에곤 실레의 그림 한점을 두고 닿아 있다. 창녀이거나 자신이 창녀가 될 줄 모르는 여자가 욕망하는(혹은 가까이 두는) 그림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에곤 실레의 <흑발 소녀의 누드>. <나쁜 남자>에서 선화가 사창가의 깡패 두목 한기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써주는 이유는 에곤 실레의 화집을 찢었기 때문인데, 이때 찢은 그림이 바로 <파란 대문>에도 이미 등장했던 <흑발 소녀의 누드>. 실레 작품 속의 여체는 한껏 뒤틀린 모습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미적인 기능을 상실한 고뇌와 죽음의 상징이다. 실레의 시선으로 여과된 여체는 파괴적인 고뇌로 가득한 정신세계를 표출한다.

<흑발 소녀의 누드> 에곤 실레
그림을 그리는 창녀 진아가 들고 다니는 그림은 28살에 요절한 화가 에곤 실레의 <흑발 소녀의 누드>이다. 진아는 <흑발 소녀의 누드>가 담긴 액자를 모래사장 위에 세워두고 하염없이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본다. 중요한 점은, <흑발 소녀의 누드> 속 여성의 모습이 진아와 매우 닮았다는 사실이다. 에곤 실레가 19살의 나이에 개인 화실을 차린 뒤 소녀 창녀들을 모델로 누드화들을 대량으로 그렸던 시기에 탄생한 이 그림 속 영혼이 상처받은 여인은 바로 진아를 상징한다. ‘새장 여인숙’에서 매춘부로 일하며 삶의 희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진아의 모습을 대변하는 이 그림은 이후 <나쁜 남자>에서 한 여대생을 진아의 운명으로, 매춘부의 운명으로 끌어들이는 결정적 구실을 한다.



[발췌정보: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