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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나눔/지식과상식

미술작품 감상방법

미술작품 감상방법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기본적 방법


인류가 탄생하여 시각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기억을 하고 사고가 시작 될 때부터 바위 위에 벽화 또는 나무, 흙 바닥, 또는 몸에 지니고 있는 도구 • 옷이나 지팡이 등에 형상을 그리면서 미술은 시작되었다. 즉, 원시인간이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지나간 시각을 형상으로 보존하고 싶은 기록의 욕망과 또 하나 선이나 입체 등 흔적으로 표시되는 형상을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형태적 욕망 즉, 기록과 형태적 욕망이 미술의 근본이다.

우리가 발견 할 수 있는 벽화 등, 원시적 미술로부터 수 만년이상 발전되어온 미술은 물감이 탄생하게 됨으로 기록의 욕망은 사진과 같은 사실주의 미술로 발전하였고 사실주의 미술에서는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예술성을 평가 하였으며, 이에 더하여 형태적 욕망은 그림에 인간의 사고를 가미 하는 내부질서와 주의•主意로 눈을 돌리는 새로운 미술 양식으로 발전하면서 이러한 미술의 내부적 질서와 주의가 구도, 선, 색체가 조화롭게 표현될 때 예술성이라고 통칭 한다.

형태적 욕망으로부터 발전한 미술의 내부적 질서와 주의 즉, 현대미술의 예술성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사전달로서 메시지를 말하며 반면에 관람자는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를 받아들여 어떠한 느낌 즉, 이미지를 생성하느냐에 따라 현대 미술에서 예술성을 평가하게 된다. 따라서 예술성은 20세기 들어오면서 형태와 색채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하고 개성과 주관은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되면서 사실주의 인상주의 낭만주의 고전주의 등 많은 이즘(ism)이 생겨난다. 특히 추상미술이 나타나면서 현대미술은 이즘이 넘쳐나고 난해한 이론도 뒤따르게 되어 미술을 이해하는데 심각한 장애가 되었다..

현대미술작품의 예술성은 추상이던 구상이던 미술의 대상•對象을 선•線 과 구도•構圖 그리고 색채•色彩로 표현하게 된다. 예술은 문학, 음악, 연극 등 모든 예술을 포함하여 독창적이고 독특하여야만 그 예술성을 인정 받게 된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화풍에 이미지표현을 더하여 자기만의 영역을 개발 하였고 고흐는 창조적인 색의 조합으로 뭉크는 인간의 내부적 메시지를 반추상으로 그리고 많은 화가들이 당시의 미술계를 파괴 함으로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바탕에서 미술은 발전하여 왔으나 사진이 세상에 태어남으로 사실주의 작품들은 기록의 가치를 사진에게 넘겨주어 사실주의 미술작품들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되었다. 따라서 현대 미술계에서 작가들은 생존하기 위하여 자기만의 독특하고 독창적인 표현 방법을 개발하고자 독자적 창조성을 추구한다.

차별화된 독창적 창조성은 현재 미술화법을 파괴할 때 생겨나게 된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화법이던 대상이던 또는 색채 즉, 기존의 틀을 혁명적으로 파괴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함으로서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20세기 21세기 미술에서는 화가의 수에 비례하여 너무도 많은 이즘•ism이 탄생하고 사실상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미술작품의 내부적 질서와 주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고 보는 사람 관점에서 각자가 평가 하게 되고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현대 화가들의 작품, 미술을 주도하는 평론가, 컬랙터들이 인정하는 작품들 까지도 선만으로 거미줄처럼 그리거나, 검은 점 만을 나열하거나, 담배 꽁초, 물방울, 이상하게 일그러진 얼굴, 멀뚱한 눈방울, 쓰레기, 부서진 자동차, 돌, 부엉이, 물고기 등 때로는 위화감, 흉측함, 혐오감, 전율 등 등 대중들이 보아 도저히 실내에 걸어놓기 불편한 그림을 명화라고 열광하게 하고 이러한 작품의 진가를 알지 못하는 대중들을 위화감에 빠지게 하면서 이를 수십억에 거래하고 있으나 일반인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부끄러워한다.

아무리 현대 미술이라고 해도 미술작품이란 실내 또는 사무실 등 주거지에 걸어놓고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며 그림으로부터 즐거움을 또는 필요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어야 미술품으로 인정하고 싶은 게 대중들의 미술관이다. 그렇다면 어렵고 난해하며 흉측한 작품을 생산하는 현대 또는 전위 작가들의 작품에 대하여, 미술계 평론가, 미술상 그리고 상위 컬렉터•collector 들은 이들 작품을 명화로 인정하는 걸까. 이들이 이러한 그림들을 명화로 인정하는 데는 미래의 시각으로 추정하여 볼 때 향후 50년 100년 후에 분명 대중들로부터 문화와 정서가 이러한 그림들이 미래인들로주터 인정받을 수 있는 소재를 보았기 때문이며, 대중들이 볼 수 없는 전문가 만이 보여지는 요소들 대상과 선, 구조 그리고 색채로 조화된 작품의 내부적인 질서와 주의가 미술적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화상들이 어느 화가의 작품을 어떤 목적에 의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 고의적으로 작품을 띠우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미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대중들은 어떻게 미술을 감상하고 평가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대부분 미술계 관련자들은 미술작품의 예술성을 평가하고 이해하려면 평론가의 평론을 보라고 한다. 우리들이 미술전시회에 가면 대부분 전시장 입구에 화가그림에 대한 평론이 붙어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평론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예를 보자,
【 한국의 엥포르멜 회화, 모노톤 획일주의, 모노톤 회화의 단선적 역사, 큐비즘과 오르피즘, 초현실 이즘에서 없어서는 안될 지성, 민중미술과 포스트모던, 아방가르드, 네오 지오메리즘, 컨셉츄얼리즘, 푸코, 라캉, 소쉬르, 하버마스, 리오타르, 민중미술, 조형적 탐구의 형상성, 메타클리틱, 통시적 연결, 강박증의 일탈, 청색의 사조 등등 】 

이러한 평론을 보고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미술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다. 따라서 일반인인 관람자들은 평론을 대충 훑어보고 무엇을 아는 냥 고개를 한 두 번 끄덕이고 지나가면서 속으로는 “아” 나는 미술에 대하여 무식하구나 하는 자괴감만 받게 된다. 모처럼 미술을 감상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전시회에 들렸지만 평론은 미술작품의 이해를 도와 주기보다는 관람자 자신의 무식함에 자조하게 하는 더없이 큰 짐을 지워주기만 한다. 일반대중들 “그렇다고 일반인이 특히 무식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미술평론가 그리고 평론가 또는 화가들이 일반인들의 전공범위에서는 무식하기는 마찬 가지이기 때문에”은 자조할 필요 없이 그림 자체가 주는 색채조화의 아름다움과 그림의 내부적 질서와 주의로부터 풍기는 이미지를 이론보다는 정서적으로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미술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결론으로 미술감상은 먼저 감성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면 된다. 그러나 그림은 사진과 달리 대상이 주는 수평적 단편적 이미지를 뛰어 넘어 같은 대상이라도 작가의 화법에 따라 전혀 다른 입체적 4차원적 이미지를 생성하기 때문에 보다 더 예술성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림 속에서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감성적 이미지는 무엇일까, 그림에 색과 구도 그리고 선이 어우러져 연주하는 운율은 들리는가, 그림 속에 색감은 나의 마음에 어떻게 어디로 끌고 가는가를 찾을 수 있는 감상자라면 어떤 평론가보다도 훌륭하게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있다고 자부하여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