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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미술재테크

[미술투자]부자들의 마지막 로망 `미술` [조인스]

부자들의 마지막 로망 `미술` [조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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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에게 한때 값비싼 자동차나 콘도, 고급스러운 패션, 음식이 주요 관심사였다면 이제 또 다른 ‘로망’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미술작품을 소장하는 것이다. 중년의 CEOㆍ의사 등 ‘가진 자’들은 자신의 집무실이나 병원에 유명 작가의 그림을 걸어놓고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즐긴다. 미술 작품이 부자를 상징하는 또 다른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예술 장르 가운데 왜 하필 미술인가.



◇희끗한 머리의 CEO, 미술 공부를 시작하다= 7일 오후 서울 청담동 ‘the colums’ 갤러리. 프루베(Prouve),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 자너레(Jeanneret), 마크 뉴슨(Marc Newson) 등 내로라 하는 현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이 곳에 한 중년의 신사가 들어섰다. 그는 큐레이터에게 “몇 년 대 작품이냐” “작품 탄생의 배경을 알고 싶다”고 물어보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그림 몇 점을 예약하고 자리를 떴다. 갤러리 관계자는 그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이어 들어온 한 여성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작품 탄생의 배경에 큰 관심을 보이더니 이내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예약했다. 이들이 예약한 작품은 수천 만원에서 수억 원어치에 달했다.

‘the columns’ 장동조 대표는 “요즘 그림을 사가는 고객 중에는 부인뿐 아니라 남성 CEO 고객이 많아졌다”며 “대부분 월급쟁이 사장이 아니라 직접 회사를 일군 사람”이라고 전했다. 재력은 있는데 소일거리가 많지 않은 의사들도 그림을 많이 사는 편이다. 이들은 따로 시간을 내 그림 공부를 해두었다가 전시회에서 개인 소장용으로 구입한 뒤 병원에 그림을 걸어놓는다. 장 대표는 “남성이 여성보다 그림을 택하는 ‘결정력’이 있다”며 “단순한 느낌보다는 기업 이미지에 맞게 그림을 사거나, 자신의 배경과 지식에 의해 길러진 고유한 취향에 따라 선택한다”고 전했다.

‘큰손’들은 갤러리에서 단연 VIP고객이다. 개인 소장용으로 몇 점씩 사기도 하지만 미술관 컬렉션 수준으로 많이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외국에 갔을 때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미술관 방문이다. 프랑스에 출장 가면 파리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나 루브르 박물관을 가장 먼저 찾는다.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나 대영 박물관도 이들의 단골 코스다. 유명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단 한번으로 끝나지만 이들에게 그림은 영원하다. 그래서 이들은 미술에 더욱 집착한다.

‘the columns’ 장동조 대표
◇투자로 한몫 챙기는 졸부는 ‘사절’= 고객이 그림을 사는 경로는 크게 경매와 전시회가 있다. 국내는 보통 1년에 3~4회 경매가 열리며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등이 유명하다. 전시회를 통해 사는 경우, 일단 전시가 열리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점 찍어 두었다가 예약을 하는 방식이다. 이 기간에는 계약금만 치르고 전시 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나머지 대금을 지불한다. 갤러리 법인 계좌에 바로 송금하기도 하고, 비싼 작품의 경우 할부로 나눠 내기도 한다.

그림값은 적게는 수백 만원, 많게는 10억원에 달한다. 같은 작가라도 연도나 화풍에 따라 가격이 다르고 비싼 작품은 자산 가치가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림을 하나의 투자처럼 생각하고 매매하는 ‘졸부’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장 대표는 “최근에는 소문을 듣고 와서는 무작정 그림을 사갔다가 되파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고객들은 미안하지만 업계에서 ‘사절’”이라고 잘라 말했다.

청담동에서 수년간 갤러리 디렉터로 활동했던 C씨는 “한번은 어떤 중년 여성이 ‘앞으로 가격이 올라갈 젊은 작가 그림을 알아서 찍어달라’고 무작정 전화를 걸어왔다”며 “자신만의 취향이 있어야 하는데 그림을 눈이 아닌 ‘귀’로 사는 광경을 보면서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

갤러리 관계자들은 진정한 컬렉터는 자신만의 취향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직접 돈을 써가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만의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의 마지막 고지, 미술= 최근 프랑스 주간지 ‘누벨 오브세르바퇴르’는 부자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른바 ‘신부르주아(Les nouveau bourgeois)’는 ‘경제적 자본’은 물론 ‘상징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외에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한 ‘문화적 자본’까지 골고루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랑제꼴(프랑스 최고 학부)’ 출신이거나 박사 학위가 있고,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함은 물론 여기에 반드시 덧붙여지는 요소가 전시 관람과 미술작품 구입이다.

한국의 부자들도 이제 문화적 자본에 눈뜨고 있는 것이다. ‘VVIP’를 대상으로 하는 PB 전문지점인 하나은행 청담애비뉴 장정옥 지점장은 “차별성 있는 재화만이 부유층 고객을 끌어당길 수 있다”며 “미술은 클래식 음악과 더불어 가장 여유로운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분야”라고 전했다. C씨도 “그림은 부자들에게 마지막에 오는 단계인 것 같다”며 “그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자만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미술 열풍 이면에는 아직 거품이 많다는 지적이다. C씨는 “미국 컬렉터 중에는 아기가 포함된 가족 전부가 각각 자신의 취향대로 컬렉션을 하기 위해 스위스 ‘바젤 페어’까지 가더라”며 “그만큼 자신만의 취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부유층의 미술 열풍에는 아직 진정한 컬렉터 정신이 없는 것 같다”고 평했다.

김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