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전시/미술계동정

거친듯 생소한 오브제‘뉴페인팅’의 거장

거친듯 생소한 오브제‘뉴페인팅’의 거장

전방위 작가 슈나벨展

이 작가, 참 여러 영역을 누비며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미국 ‘뉴 페인팅’의 대표주자 줄리앙 슈나벨(57ㆍ사진) 말입니다. 그의 작품전이 27일부터 4월20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대표 도형태)에서 열립니다. 그동안 국내에 간간이 그의 그림이 소개되긴 했으나 이번처럼 1980년대 작품부터 신작까지 망라된 본격적인 개인전은 처음입니다.

대중에게 슈나벨은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합니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로 2007칸영화제와 2008골든글로브에서 감독상을 받았으니까요. ‘잠수종과 나비’는 전신마비로 왼쪽눈 하나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게 된 잡지계 거물이 ‘눈 깜빡임’만으로 소설을 집필해가는 과정을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로 흥미롭게 그린 수작입니다. 이미 ‘바스키아’ 등 여러 편의 영화를 선보였지만 이번 작품은 감독으로서 물이 올랐음을 입증해주고 있죠.

슈나벨은 화가, 영화감독뿐 아니라 사진가, 조각가로도 활약 중입니다. 그 뿐인가요? 뉴욕 렉싱톤가의 초특급호텔(그래머시파크호텔)의 벽면장식 등 인테리어 작업도 했고, 서핑 실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하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화가입니다. 약30년 전 슈나벨의 등장은 미술계에 있어 일대 ‘폭발’과도 같은 사건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는 1970년대 빈사상태에 빠졌던 미국의 회화장르를 거의 혼자 힘으로 구해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당시 추상표현주의가 저물고, 그 뒤를 이은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이 워낙 삭막하고 건조해 “회화는 끝났다”는 진단이 무성했죠.

그러나 슈나벨은 “만일 회화가 죽었다면 이제 새롭게 시작할 시점”이라며 캔버스에 깨진 접시를 붙인 후 강렬한 붓놀림으로 폭력 죽음 신화 등 상징적 이미지를 구현한 ‘플레이트 페인팅’을 선보였습니다. 이 ‘접시 회화’는 슈나벨이 스페인을 여행하며 가우디의 구엘공원에서 받은 영감에, 대학시절 식당서 일한 경험을 뒤섞어 탄생시킨 것으로 훗날 슈나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됩니다. 1979년 슈나벨은 이 작품으로 뉴욕의 명문화랑 메리분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순식간에 매진되고 말았죠.

이후 슈나벨은 로스 블레크너, 데이비드 살르 등과 함께 ‘표현의 회복’을 주창하며 더욱 대담하게 ‘뉴 페인팅’ 운동에 박차를 가합니다. 특히 동물가죽, 벨벳, 타르를 칠한 천 등 특별한 질감을 가진 바탕에 화려한 색채로 과감한 스타일을 구축한 것은 단연 돋보였죠. 작품 속에 언어적 요소를 거침없이 가미한 것과 매 전시마다 전혀 다른 세계에 도전한 것도 높이 평가할 대목입니다.

이번 슈나벨 전시는 아시아 순회회고전(베이징-홍콩-상하이)의 마지막 순서로 주요작 등 30여점이 나와 슈나벨의 예술세계를 음미해볼 수 있습니다. 참, 슈나벨은 휴스턴대학 졸업반시절 뉴욕 휘트니미술관 연구프로그램에 선정되자 자신의 작품슬라이드를 식빵 속에 끼어넣어 샌드위치로 만든 후 발송했답니다. 역시 그다운 참가신청서였죠? 천재는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02)734-6111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