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의 교훈 1 | |||
숭례문이 불타던 날 많은 국민들은 슬픔에 잠겼다. 나라의 보물 하나를 관리하지 못해 소실시켜버린 국가를 원망하고 국민들 스스로도 자책을 서슴지 않았다. 산골에 처박혀 있는 문화재도 아니고 수도 서울 한복판에 서있는 국보가 타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어느 누가 착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갖가지 감회(?)에 젖었을 것이다. 6백년 역사를 지켜온 국보 1호를 태워버리고 한동안 많은 반성과 자책이 매스컴을 장식했다. 뒤늦게라도 이런 시간을 가졌다는 게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물을 다 태워먹고 반성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번 화재사건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커다란 계기를 만든 게 사실이다. 그래, 돌이켜보자. 그동안 숭례문이 우리의 상징으로만 남아있지 않고 이를 통하여 커다란 돈벌이가 가능했더라면 우리가 숭례문을 이렇게 대우(?)했을까? 그러니까 전 세계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숭례문을 보겠다고 몰려들고 이를 통하여 막대한 관광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숭례문을 학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상징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전혀 도움도 되지 않은데다, 도심에 버티고 있어 교통만 방해한다고 여겨지던 존재여서 이런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게 진실이 아니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가보았던 인도가 자랑하는 세계의 7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타지마힐’을 떠올려 본다. 뉴델리에서 가는 길도 멀었지만 들어가기는 더욱 쉽지 않았다. 길게 늘어선 줄에다 검색마저 무척 까다로웠다. 몸수색을 해서 라이터 같은 위험물은 말할 것도 없고 가방을 뒤져 ‘먹을거리’까지도 다 빼앗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건물에 들어갈 때는 훼손을 우려해 신발조차도 신지 못하게 했다. 인도가 이 문화재를 통해서 엄청난 수입을 올리기에 그랬을 거라고 말한다면 극히 한국적인 발상이라고 욕을 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돈벌이가 안 되면 문화재고 보물이고 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 아닐까? 다시 돌이켜보자. 과연 우리에게 문화와 문화재의 가치를 인식할만한 유전자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보호하고 가치를 인식할 인자가 몸속에 깃들어 있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목조건물이야말로 화재에 너무나 취약해서 불에 소실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옛날에도 궁에서 제일 무서워했던 게 화마였으며 전쟁이라도 나면 전부 소실되어 버리는 게 목조건물의 운명이다. 그래서 불타면 다시 짓곤 했다. 그러니까 600년을 지켜온 숭례문이 불타버린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잘 복원해서 유지하면 앞으로 천년도 더 갈 수 있는 게 목조건물인 유형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화급한 사안은 채 100살도 채우지 못하고 영구히 사라져 버리는, 절대로 복원이 불가능한 무형인 인간문화재에 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무리 숭례문이 불타버렸지만 훌륭한 기능을 가진 도편수(대목)들만 존재한다면 얼마든지 복원이 가능한데 반하여 이마저도 없다면 우리가 무엇으로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이을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유물의 보존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인간문화재를 육성하고 존속시키는 일이다. 물론 숭례문을 다시금 복원한다 해도 태초의 정신은 이미 소멸한 것이라고 애석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차피 목재건물은 부패하기도 쉬워서 영원을 기대하기는 힘든 게 현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이번 화재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은 한번 사라지면 영원히 복원이 불가능한 인간문화재에 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후손에게 남길 유물과 문화는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따라서 기능을 가진 인간문화재들이 지속적으로 명맥을 유지하기만 하면 우리의 문화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래전 일본의 전통예술인 ‘분락구(文樂)’를 관람한 적이 있다. 그들은 단순한 나무 막대기에 불과하던 인형에 눈동자가 움직이도록 발전시키는데 100년 이상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분락구를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그에 반하여 우리는 지난 시절의 형상을 그대로 간직한 것만이 문화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한 나라의 문화 정체성은 후손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을 때 생명력을 갖는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독창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만 세계화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도 문화재를 ‘박물관적’으로만 인식하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통의 맥을 이어갈 인간문화재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숭례문마저 이런 정도의 대접밖에 받지 못하는데, 형상마저 없는 무형(인간)문화재가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언제 사라지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는 게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거기다 이제부터는 모든 국민이 영어로 지껄여야 하고, 며느릿감마저 외국에서 모셔오는 현실이 계속될 텐데 앞으로 전통마저 잇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겠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실이라면 아무리 훌륭히 숭례문을 다시금 복원한다 해도 머지않은 장래에 ‘조선족’의 유물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다. 몇 해 전 만주의 선양에 공연을 하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초창기의 궁전을 보고 너무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궁궐에 이상한 글자가 보여서 물어보았더니 만주족의 문자라고 했다. 그러니까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자신들의 고유의 말과 문자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무리 중국 천하를 다스렸다 해도 그들의 족적이 사라진 지금에 와서 그들의 문화재는 이미 사라진 만주족의 유물에 지나지 않을 뿐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문화를 지속하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히 숭례문을 다시금 세워 본들 “저게 바로 조선족들의 유물이야. 2008년에 불타서 다시 지었지”하는 말만 들을 건 너무나 뻔하다. 그나마 현판까지 한자로 적혀 있어 숭례문은 우리가 중국의 변방 족이었음을 대변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가정은 지나치게 과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새 정부는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우리의 문화적 현실을 직시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숭례문이 속절없이 불타버린 것은 우리에게 많은 자성과 지혜를 얻도록 하는 선조들의 채찍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흔히들 지난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부른다. 유럽에서는 좌파정권이 서면 우파에 비하여 문화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의 좌파정부는 자파의 인맥으로 문화계의 모든 자리를 ‘싹쓸이’하는데만 골몰했지 어느 곳에서도 분명한 문화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새로운 정권마저 문화를 실용과 경제로만 풀려는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영원히 전통이 없는 문화 후진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솔직히 새 정부도 인간과 인간의 재능에는 ‘까막눈’으로 일관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다. 따라서 이 시대에 분명한 것은 돌로 철(鐵)로 목재로 지은 ‘박물관적’ 문화재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바로 역사와 문화를 이어갈 인간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서 우리의 정체성은 유지될 것이다. 꼭 600년의 역사를 지닌 문화재만이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미래의 시대에도 여전히 정체성을 이어가려면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이어갈 살아있는 생물인 인간문화재에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문화적 활동기는 겨우 30년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기를 놓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게 인간문화재다. 그러므로 새 시대에는 유형만이 아닌 무형의 문화재, 인간문화재에도 관심을 갖도록 하자, 그리고 그런 나라가 되기를 염원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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