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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나눔/지식과상식

옛그림읽기의 즐거움 (김홍도의 무동)

옛그림읽기의 즐거움 (김홍도의 무동)
낙천성과 대범함에서 우러난 자연미
지금 저 사람들이 한창 질펀하게 놀고 있는 가락은 어떤 소리, 무슨 장단일까 (도1) 삼현육각(三絃六角), 즉 북 장구에 피리 둘, 대금, 해금까지 여섯 악기가 한데 어울려 한바탕 흥겨운 가락을 몰아가니 잘생긴 무동(舞童)아이는 덩실덩실 소매를 펄럭이며 걸지게도 춤을 춘다. 아마도 굿거리를 연주하는 듯 싶다. 그럼 이 자리는 무얼 하는 자리일까? 굿판일까, 탈춤판일까? 아니면 어느 복 많은 노인의 회갑 때 벌어진 잔치 자리일까? 삼현육각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유가(遊街)할 적에 스승, 선배, 친척 들을 찾아뵈면서 사흘 동안이나 광대를 앞세우고 풍악을 잡혔다고도 하고 또 신임 사또의 부임 행차길에서도 연주를 했다지만 그것들은 다 서서 하게 마련이니 이 그림과는 상관이 없겠다.
화가는 아무도 보고 듣는 이 없이 악공(樂工)과 무동만을 동그랗게 그렸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화가는 저들이 누구를 위해 연주하는가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악기를 잡은 여섯 사람과 춤추는 아이, 바로 그들의 음악과 춤만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인 것이다. 이들은 사회 신분으로 보면 미천한 계층에 속한다. 여기서 오라면 여기로 가고 저기서 부르면 저기로 불려가서 돈 많고 권세 높은 이들에게 한때의 즐거움을 파는 광대패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예술가다. 이제 저들만의 독특한 ‘짓’과 ‘투’에서 그것을 느낄 수가 있다.
좌고(左鼓)를 치는 사람부터 보자. 왼다리는 접고 오른다리만 세워 상체를 곧추세우고서 양손에 궁글채를 잡아 큰 장단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줄곧 대금과 해금 연주자에게 못박혔다. 채 끄트머리에 달린 술이 꽃잎처럼 펼쳐진 것은 “덩 덕 쿵덕쿵”하고 울리는 북소리를 눈으로 보게 해주는 것 같다. 장구 치는 이는 어떠한가. 흥이 달아올랐는지 무릎 위로 장구를 바짝 끌어안고서 오른손에는 열채를 쥐고 왼편은 맨손으로 북편을 치는데 유연한 손목 놀림으로 북편을 울린 저 “구궁” 하는 낮은 소리가 마음바닥에까지 와 닿았나 보다. 윗몸을 앞으로 슬쩍 수그리고 어깨는 장단을 따라 들썩거린다. 코 위가 넓은 갓양태에 가려 보이지가 않아 그렇지 두 눈도 지긋이 감았음이 틀림이 없다. 그런데 북편 쪽의 쇠가죽 측면이 지나치게 넓어보이는 것이 조금 눈에 걸린다. 하지만 당시의 장구 모양이 본래 그랬는지도 알 수가 없다.
피리 부는 사람을 보자. 우선 오른쪽에 벙거지를 쓴 사람은 들숨이 입안에 가득 차서 두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감발한 왼발을 위로 둔 양반다리를 하고 윗몸을 똑바르게 세우고 있는 까닭은 피리라는 악기를 연주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선 입술로 서(설舌 이라고도 하고 혀라고도 한다. Reed)를 무는 것부터가 까다롭다. 겉보기엔 입술 모양이 익살맞은 듯 해도 본인은 무는 힘의 세기와 입김 조절이 어려워서 온 정신을 한 곳에 모으고 있다. 그 왼편의 갓 쓴 이는 벌써부터 입술이 아팠던 모양이다. 옆 사람과는 달리 삐딱하게 입가에다 고쳐 물고 능청스럽게 가락을 불어낸다. 그 표정을 보자 저들이 벌써 한참을 놀았다는 정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대금 부는 사람이다. 키가 훌쩍 크고 마른 인상의 이 인물은 손가락이 길어야 불기 좋은 대금 연주자로 아주 제격인 듯싶다. 대금은 젓대라고도 하는 순수한 우리 고유 악기로 넓은 취공(炊孔)에 댄 입술을 조절하면 음 높이가 달라진다. 저 연주자의 입과 볼에 깃든 섬세한 표정을 보면 입김따라 하늘거리는 곱고 맑은 가락이 들릴 듯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왼쪽으로 젓대를 잡았으니 오늘날 오른쪽으로 잡는 것과는 반대이다. 그러나 이것은 화가의 실수가 아니다. 관악기는 사람마다 부는 자세가 달라 좌우가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리 부는 두 사람의 손 모양이 서로 다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제 해금을 켜는 사람 차례다. 속된 말로 깽깽이라고도 하는 해금은 활로 줄을 마찰시켜 지속을 내기 때문에 우리 음악이 갖는 농현의 멋을 극한까지 보여준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 풍부한 가락의 굴절은 생각만 해도 신명이 넘치는데 아쉽게도 연주자가 뒷모습만 보여서 표정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사람의 모습에는 한곳에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바로 음 높이를 고르는 왼손이다. 해금을 연주할 때는 왼손으로 줄을 감싸안아야 하는데 거꾸로 손등이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실수를 알아볼 사람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흥미로운 점은 <씨름>에서와 마찬가지로 뒷모습이 그려진 사람은 똑같이 손 모양에 허점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춤추는 아이를 살려보자. (도판 2) 몇 살이나 되었을까? 어른은 분명히 아닌데 그렇다고 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숙성해 보이는 것은 흐드러진 춤사위가 너무나 멋스럽기 때문일까? 아무튼 수염이 없고 얼굴 생김이 동그란 점으로 보아 열셋이나 열넷쯤 된 소년이라고 생각된다. 왼쪽 발로 힘차게 땅을 구르자 그 김에 절로 오른쪽 다리가 둥실 들렸는데 덩달아 휘젓는 팔의 매무새가 소매 끝까지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소년의 모든 체중은 맵시 있게 들어올린 발끝의 한 점으로 지탱되고 있다. 지금 이렇게 펄적 뛰어오른 자세를 보면 당초엔 느렸던 가락이 한참을 이어지는 동안에 꾀나 빨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소년의 출렁이는 옷자락에는 그야말로 우리 옛 그림에서만 볼 수 있는 멋드러진 묵선이 펼쳐져 있어서 눈이 번쩍 뜨인다. 우선 다른 악공들의 옷주름과 비교해보면 저들의 주름선은 대체로 굵기의 변화가 적어서 마치 요즘의 사인펜 선과 비슷하다 그러나 소년의 그것은 전혀 다르다. 첫째는 붓이 종이에 닿는 순간에 묵직하게 힘이 들어갔고, 둘째로 팔꿈치나 손목과 같이 선이 꺾어져 나가는 부분에서 묵선이 우뚝우뚝 서면서 기운이 뭉쳤으며, 셋째로 윗몸에 두른 끈이 바람에 날리는 부분이나 빨간 신발의 윤관선에 잘 보이듯이 선이 매우 빠르고 탄력이 있다. 이렇게 빠르고 변화 많은 선으로 그렸으므로 아이의 춤사위는 절로 경쾌한 율동감이 넘쳐난다. 앞서 “우리 옛 그림에서만 볼 수 잇는 멋드러진 선”이라고 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인물화에는 이와 유사한 선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도 이와 비슷한 선을 쓰며 어쩌면 더욱 정교한 선을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저들 그림의 약점은 오히려 그 정교함에 있다. 이 소년의 경우처럼 인위적인 느낌이 없는 참 천연덕스럽게도 척척 그어댔구나 하는 선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그들에게도 매우 강렬한 선이 있다.ㅣ 하지만 그 경우도 역시 그들은 강렬함 자체를 너무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옛 그림에 보이는 자연스러움과는 영 다른 것이다. 이 자연스러움은 어쩌면 만사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우리 조상들의 타고난 낙천성과 대범함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작품 전체를 보면 소년의 옷선이 가장 진하고 해금 주자, 대금 주자 순으로 점차 뒤에 물러나면서 먹선의 농도가 일정하게 흐려졌다. 차례로 흐려진 묵선은 일체 배경이 없는 이 작품에 강한 내적 질서감을 준다. 구도는 <씨름>과 마찬가지로 원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심이 비어 있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음악이란, 특히 민속악이란 골똘하게 집중하는 그 무엇이라기 보다 오히려 흐드러지게 신명을 내면서 흥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도는 구심적이 아닌 원심적인 것이라야 주제와 어울린다. 화폭 가운데 가상의 원 중심을 두고 살펴보면 무동의 옷자락이며 좌고의 둥글채, 그리고 오른편 피리, 대금, 해금의 선이 모두 방사선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그리고 화가는 춤추는 아이로 하여금 그림의 초점을 삼고자 하여 다른 인물들로부터 약간 떼어서 그렸다. 특별히 짙은 연록색 옷을 입히고 보색으로 빨강을 써서 머리장식을 넣고 신을 신겼으며 또 율동적인 선으로 온몸이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삼현육각 연주는 실제로 그림에서처럼 둥글게 앉아서 노는 일이 없다. 일렬로 앉아 연주하는 것이 판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품의 원형 구도는 화가가 운영한 뛰어난 화면구성이 아닐 수 없다. 방사선 구도의 원심적인 요소가 신명 넘치는 우리 옛가락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조성했다며 원형 구도 자체로는 둥글게둥글게 넘어가며 듣는 이를 하나로 묶어내는 우리 옛 장단의 멋을 참으로 잘도 재현해냈다고 하겠다.<무동>은 <씨름>과 함께 유명한 '단원풍속화첩'에 들어 있는 25점 낱장 그림 가운데 두 폭이다. 이 작품들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담배 곽의 디자인으로 소개된 이래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잘 알려졌고 또 그 만큼 인기도 매우 높은 작품이다. 그러한 대중적 인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소재의 친근성이다. 너무나 그리운 우리 조상들의 세상 사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림의 만화적인 성격이다. 작품이 마치 풍물시장을 보도하는 신문 속의 삽화처럼 세부가 소상하면서도 익살맞다. 셋째는 단순하고 빠른 필선이다. 사인펜으로 그린 현대의 캐리커쳐인 양각 인물들을 요령 있게 특징 위주로 그렸으므로 대하기가 편하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 작품이 정말 김홍도의 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수학문제를 풀 듯 똑 떨어지는 판정을 내릴 수가 없다. 그것은 <무동> 왼편 아래쪽에 보이는 백문방인 '김홍도인(金弘道印)'이라는 도서가 작품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나중에 찍힌 가짜 도장이기 때문이다. 실물을 잘 보면 퇴색되고 자잘한 상처가 난 종이의 표면 위에 도서가 찍혀 있다. 그렇지만 확실한 글씨나 도서가 안 보인다고 해서 거꾸로 다른 화가의 작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작품 내용상 이제까지 알려진 다른 어떠한 작가보다도 김홍도의 화풍이나 솜씨와 가장 잘 어울리는 수작이기 때문이다. 옛분들의 전칭(傳稱)에는 가끔 잘못된 예도 없지 않지만 분명한 다른 반증이 없다면 일단은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옳다.
오주석(미술사가,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자료제공 솔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