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상품(Craft)

[아트상품]하임 스타인바흐 '예술 쇼핑'

예박(艺博 )_이버 2008. 8. 30. 13:40
하임 스타인바흐 '예술 쇼핑'

중국 화가 왕광이 Wang Guangyi(1956- ) 는 1970년대 중국 ‘대약진’시대의 포스터 안에 재미있는 반칙을 집어넣었다. 한 때 이 포스터들은 이데올로기적 확신에 가득 찬 인물들의 중단 없는 혁명적 외침을 선전하는 좋은 매체였다. 왕광이는 포스터에 루이비통, 샤넬, 구찌 등의 로고를 집어넣어 마치 포스터의 인물들이 해당 상품들을 광고하는 모델들로 전락한 것처럼 꾸민다. 포스터는 물론 PPL 혹은 Product Placement 식의 광고 효과를 노린 작품들이 아니다. 이들의 브랜드는 이미 너무나 대형화되고 세계화되어 하나의 보통 명사처럼 기능하니까. 타협을 모르던 전사들마저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돈맛 덕분에 광고 모델처럼 바뀌어버린 현실을 풍자하는 작품들이다.

 

지금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는 파야 PAYA의 그래픽+사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어린 아이마저 어른보다 나을 것도 없이 사치품에 둘러싸여 즐거워하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제목도 'Noblesse Children'이다. 로이 리히텐시타인의 ‘행복한 눈물’이나 반 고흐의 ‘노란방’과 같은 작품도 신귀족 계급의 아이들 앞에서 결국, 클리셰 cliché로 전락해 버렸다. 놀랍게도 파야의 아이들은 잊혀진 아우라를, 뭔가 위엄을 보여주려 한다. 이미지만 살아남은 세상이다.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빌어 와 자신을 만든다. 백화점 마네킹이 단지 브랜드 모델이듯이 우리들도 충실하게 그 역할을 다하려한다.

 

 

 

 

파야, 'Noblesse Children #12' 디지털 프린트, 130×78cm (2008)

 

 

 

   Heim Steinbach 'related and different' (1985)



하임 스타인바흐 Heim Steinbach (1944~) 의 오브제 역시 노골적으로 상품 목록을 드러내 보인다. 그는 색깔, 형태, 내용 등을 고려한 후에 선반 위에 나이키 신발과 5개의 플라스틱 잔들을 올려놓았다. 이 작품의 제목은 ‘관련이 있으나 다른 Related and Different'이다. 생필품이라는 면에서 관련이 있으나 각각 용도나 의미면에서 다르다. 전체적으로 볼 때 'Related and different' 는 예술작품일까? 이건 관객들에 따라서 다를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붉은 스니커가 의미하는 저 지상의 이미지와 노랗게 반짝이는 성배(사실은 구리제품을 흉내낸 싸구려 플라스틱 잔이다)가 의미하는 천상의 이미지를 비교 대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검은 색과 밤색의 선반이 주는 질감, 재료 등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열된 상품들과도 같은 오브제들은 관객들에게 소비자 혹은 쇼핑객이라고 말한다. 예술 감식가들을 보고 고작 생활용품이나 감정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PAYA 작품에 나오는 물신에 중독된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생활용품은 아트가 되고 아트는 그저 그런 생활용품이 된다. 아니, 고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별이 점점 난해해진다.

 

뒤샹과 워홀 이후 예술은 스스로 범상해지기로 했다. 오늘날 예술은 의도적으로 무가치한 것, 무의미 한 것, 범상한 것을 지향한다. 그 반면에 세계는 점점 더 미학화한다.(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그래서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1929~2007) 에 의하면 미적인 것이 비미적인 것과의 변별성을 잃고 사라지고, 예술은 불필요해진다고 한다. 예술은 불필요해지고 결국 사망한다는 논리다. 아트에서는 미가 사라지고 철학만 한 무더기 남는 반면 일상용품은 점점 아름다워지고 우리는 신처럼 그들을 사랑한다. 예술이 사라지고 일상이 예술의 위치로 격상한다?

 

그러나 좀더 진실을 말하자면 키치만이 남아서 진짜인냥 행세하는 건 아닐까.